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웅 Jul 31. 2023

파멸

파멸


파괴하려는 그들의 목적은 불분명해 보였다. 그들은 그들이 익숙한, 관습이 된 질서에 무의식적으로 혹은 기계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순응하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그들의 눈에 어긋나기만 하면, 정의든 불의든 상관없이, 고치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되는 것 같았다. 이성과 합리에 기반한 질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숙청의 대상 선정도 전혀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들이 세운 질서에 흡수가 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 질서가 되었다. 그들이 질서 자체였기 때문에 모든 판단의 기준은 그들의 눈이었다. 눈이 가려진 그들은 생각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이미 그렇게 할 뇌를 그들 스스로 내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파멸하지 않기 위해 질서를 세웠는데, 그 질서 때문에 파멸하게 된 꼴이었다. 더 무서운 것은 그들은 그들이 파멸했다는 사실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자기만의 좁은 우물에 갇혀 큰소리만 내는, 옹졸하고 편협하고 자기애에 똘똘 뭉친 어른아이에 불과했다.


- 쓰고 있는 소설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깊은 산중: 보고 읽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