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에 감사하기
주문했던 북프레스가 도착했다. 다시 독서대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플라스틱 조각 하나에 내가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게 하는 건 어쩌면 지극히 사소한 것들 덕분일지 모른다. 크고 높은 것들이 아닌 작고 낮은 것들이 내 일상을 이룬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도 그런 소소한 것들에 감사하고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잠시 기도했다.
아내와 함께 수목원을 향했다. 늘 걷던 길이지만 오늘은 오늘 만의 고유한 날이기에 우린 함께 함을 감사해하며 길을 나섰다. 어쩌다 보니 열대 식물이 모인 실내 수목원을 들어가게 되었다. 높은 야자수들이 즐비했다. 잎사귀가 이불 만한 것들도 볼 만했다. 그리고 우린 그 옆에 있는 또 다른 실내 수목원에도 들어갔다. 다육이들과 선인장들이 작은 공간에 전시되어 있었다. 미니어처가 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엘에이 근교에 우리가 자주 갔었던 헌팅턴 라이브러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가 방문한 곳은 천연기념물센터였는데, 의외로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제주도 한라산 1,3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서만 관찰되는 산굴뚝나비, 딱정벌레 중 가장 큰 종이며 하늘소 중에서 가장 오래전에 지구상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는 장수하늘소, 언젠가 시골에서 보았던 반딧불이, 그리고 전 세계에 오직 한 종만이 존재하며 유일하게 물속을 걷고 헤엄칠 수 있는 거미라고 알려진 물거미의 사진을 보고 설명도 찬찬히 읽었다. 그리고 나는 잠시 어린 시절 목장과 계곡을 뛰어다니며 잠자리며 하늘소며 사슴벌레며 매미며 여러 곤충들을 잠자리채로 잡던 기억, 차가운 계곡 물에 발을 담근 채 바위를 들어 재빨리 가재를 잡던 기억을 떠올렸다. 나에게 지극히 시골스러운 기억들이 남아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오늘 아내와 함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