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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웅 Oct 16. 2024

구원의 동아줄에서 소중한 일상의 조각으로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구원의 동아줄에서 소중한 일상의 조각으로


인생의 가장 낮은 곳을 지날 무렵이었다. 손에 꼭 쥐고 있던 모든 걸 다 잃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기치 못한 순간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영원을 보게 되면 이런 기분일까, 하고 생각했다. 몸과 마음을 가득 채우던 불안이 사그라졌다. 서서히 평안이 찾아왔다. 두통도 편두통도 말끔히 사라졌다. 새로운 자아가, 새로운 삶이 꿈틀대고 있었다.


모처럼 허기를 느꼈다. 깊은 물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먹먹한 소리였다. 언제나 외면하기에 바빴던, 그러나 끊임없이 내 안의 어딘가로부터 들려오던 미세한 소리였다. 몸이 가벼워지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들렸다.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느껴졌다. 나의 겉은 기름칠 잘된 기계 같았지만 안은 형편없이 붕괴되어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방치했을까 싶을 정도로 무참히 버려진 텅 빈 공간이었다. 유기자는 바로 나였다. 나는 그곳을 채우고 정돈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시작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내 나이 마흔,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던 내 삶 속에 글쓰기가 들어온 순간이었다.


글쓰기는 허기진 나를 충만하게 채워주었다. 그 깊은 단맛을 본 나는 서서히 힘을 얻었고 매일 강해져 갔다. 내가 누구였고 누구인지 그리고 누구여야 하는지, 나는 무엇을 했고 하고 있으며 또 해야 하는지 등을 사유했고 텍스트로 쏟아냈다. 매일 쓰고 또 썼다. 아니, 쓸 수밖에 없었다. 너무도 시끄러운 내 안의 고독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텍스트로 된 근육이 붙자 나는 내 두 다리로 마침내 대지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진공으로 포장된 우물 밖으로 나갔다. 늘 듣던 바람 소리도 새소리도 다르게 들렸다. 모두 받아 적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글을 쓰는 건지 글이 나를 쓰는 건지 모를 정도로 점점 '쓰는 사람'이 되어갔다.


나에게 글쓰기는 구원의 통로였다. 갈급하고 절박했던 과거의 나를,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졌던 나를 심연에서 끌어올린 동아줄이었다. 7년이 흘렀다. 동아줄을 매일 잡았더니 어느덧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글쓰기를 모르던 나는 죽었고, 부활한 지금의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다.


글쓰기가 삶의 일부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소중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아무렇게나 놓아둔 양말 같은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현을 달리해 보기로 한다. '소중한 일상의 조각'으로. 그렇다. 글쓰기는 나에게 소중한 일상의 조각이다. 매일 가꾸고 매일 힘을 얻는다. 글쓰기는 숨이자 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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