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실한 고독으로서의 공부 회고
최근에 내가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외로움이다. 갑자기 찾아온 외로움에 당황했다고 해야 할까. 일상을 버텨내는 것조차 힘들었다.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누군가 채워주어서 해결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해서였다. 나는 무엇을 통해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지 잊고 있었다.
내가 가장 외로움을 느꼈던 시기를 회상해보면 정확히 3년전이다. 사람에 둘러싸여 있어도 허전했고 어떤 것도 날 채워주지 못했다. 일과 공부에 몰두했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시간이 어색했던 탓에 없는 것을 만들어서라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은 내가 내,외적으로 가장 많이 성장했었고 눈으로 보이는 결과도 무척이나 좋았다. 나를 진정으로 성장시키는 건 나의 채워짐이 아니라 결핍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강하고 온전하기 때문에 완벽함을 향해가는 게 아니라 부족하고 모남 투성이기에 노력하고 애썼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신기한 세계였으니 재미있게 배워나갈 수 있었다. 외로움에서 오는 고독함을 오히려 에너지 삼아 나아갔던 시간이었다.
일본 메이지대 교수인 사이토다카시는 '내면에 꺼지지 않은 불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큼 열정적이고 단단한 사람은 없다' '배우는 기쁨을 알면 혼자 남는 고독한 시간도 견딜 수 있게 되며 공부야말로 사람 때문에 느끼는 것이 아닌「충실한 고독」 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최근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의 요점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충실히 고독에 몰입하면 오히려 고독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아주 이상적이다. 러닝하이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극도로 몰입하는 과정을 통해 여타 감정을 느낄 새 없이 공부가 주는 극도의 즐거움만을 향유하는 것일테다.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공부란 기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며 내가 인정받고 싶은 욕망의 일부를 채워주는 도구이다. 물론 그 과정을 통해 기쁨과 희열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것을 잊어버린채 행동한다면 어느 순간 허하다. 생각이 많아지고 고민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생기가 사라진다. 그러면 멋대가리가 없다. 자신이 없으니 빛이 나지 않고 허우대만 멀쩡한 채 속은 시끄럽다. 본질에 집중하지 않은 탓이다.
본질에 집중하는 건 사실 괴롭다. 내면의 깊숙한 목소리를 들어야 할 뿐더러 묵묵하게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연의 가치를 추구하는 게 어디 쉬운 것이 있었던가. 스스로 온전한 자가 그 누가 있을까.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또한 있으랴. 그것이 어디 밖에서 채워지는 것일까. 짧지도 길지도 않은 방황 끝에 다다른 건 처음의 마음이다.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끊임없는 사투이고 투쟁이다. 본래 그런 것들은 외로운 법이다. 고독하다. 오롯한 것을 만들어내는 길은 그런 과정의 처연함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공부라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그 깨달음이 새로운 출발이다. 물론 괴롭기만 한 건 아닐테다. 애쓰고 난 뒤에 얻는 희열처럼 공부하면서 느끼는 기쁨도 있다. 지친 일상을 마무리하고 라떼를 마실 때의 달달함처럼 말이다.
이 글은 2014년 11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공부에 대한 마음을 다시 돌아보고자 회고해봅니다. 이전에 했던 생각의 모양을 돌아보니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데이터 커뮤니케이터를 꿈꾸는 경영학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