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그리고 ‘걸스’에 진정으로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
어제부로 ‘테크-걸스 컨퍼런스’ 행사를 마쳤다. 테크 분야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의 색에 맞는 연결을 자아내고픈 의도를 담아 진행했다. 의도를 충분히 담아내기에는 과정과 절차와 운영의 이슈가 있었지만, 주요한 목적 중 하나인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는 달성했다. 또한 최소한의 CoC 로 안전하게 행사를 마칠 수 있었던 점에 만족한다.
어제 행사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행동의 연속’ 이었다는 것이다. 패널토크를 일종의 블라인드 컨셉으로 가면을 쓰고 진행했는데, 이는 패널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보다 솔직한 이야기를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패널토크 세션에서 오간 답변의 수준이 매우 현실적인 동시에 유용했다. 이어서 진행한 관심사별 그룹 네트워킹에서는 보다 솔직한 결의 이야기가 오고갔다.
아쉽고 안타까운 점도 있다. 참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뚝뚝 끊겨있고, 그 정보마저 매우 파편적이고 낮은 수준의 실행단계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저는 경영학과 학생인데요. 교수님이 데이터가 유망하다고 해서요. 파이썬을 배우고 있어요. 초봉은 얼마를 생각하면 될까요?’ 와 같은 식이다. 개별정보가 메타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정보의 취득과 행동설계, 실행이 의미있는 수준의 과정과 결과로 이어지기 힘든 구조라 느껴졌다. 정보 역시 취득한 시점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단위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실행을 통해 역량과 시장 관점에 대한 평가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려면 장이 필요하다. 이야기를 꺼내고 어우러지고 안전하게 실패하고 성장을 독려하는 무대가 있어야 한다.
개별 커뮤니티가 하기 힘들 일을 지원하고 연결의 기회를 제공하는 궂은 일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공공의 역할이라고 여긴다. ‘테크-걸스’ 이 컨셉이라면, 이들이 주인공이고 실제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해야 한다. 주인공이 아닌 행사 주체가 빛나면 좋은 행사가 아니다. 공공 주도 대부분의 SW 관련 행사에 업계의 반응이 시들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다음 행사가 가능하다면 제안하고픈 것이 있다. 사실 일부 내용은 이미 전달했다. 첫번째는 ‘살롱형태로 자그마하게, 적당한 공간에서 진행하는 것’ 이다. 안전하고 내밀한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환경적 구성이다. 두번째는 ‘작은 형태의 주기적인 행사 개최’ 이다. 일년에 한두번으로는 구색만 갖추는 것이고, 여러번 정기적으로 반복해야 행사가 알려짐과 동시에 실제의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
충분한 반복이 쌓이면 신규 트랙과 지속 트랙을 구분하여 진행할 수도 있다. 세번째는 ‘고정적인 기획과 컨셉에서 탈피하라는 것’ 이다. 테크 분야는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정보와 수요, 필요한 학습 역시 달라진다. 기획된 일을 마치는 것이 아닌, 테크 업계에 관심있는 여성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점차 제공할 수 있도록, 틀에 얽매이지 않는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