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별곡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습관처럼 묻는 질문 중에 "너는 꿈이 뭐니? 앞으로 뭐가 되고 싶어?" 가 으뜸일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아이들에게 이 질문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몰라요. 없어요."
"의사요. 엄마가 하래요."
"돈 많이 주는 회사 직원이요."
"유튜버요. 게임이나 먹방?"
이 정도 답에서 벗어나지 않아, 질문하는 나를 맥이 탁 풀리게 하기 때문이다. 한때는 안타까운 마음에,
"얘들아, 꿈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멋진데, 진짜 하고 싶은 일이나 좋아하는 걸 생각해보자.."
이따위 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학원 교실에 앉은 아이들에게 꿈이 뭐니.. 를 묻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구나, "얘들아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해보고 너만의 꿈을 가져봐." 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이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영어 독해보다, 문법 문제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어지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교육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묻는 건, '뜬구름 잡는 꿈에 대한 이야기'는 다 집어치우고 '답정너' 처럼 '너는 뭐가 되기를 원하니' 가 아니라 '네가 뭐가 되길 남이 원하니? 와 동격의 질문인 듯도 하다.
어제, 수업시간이었다. 연휴를 앞두고 왁자지껄 들떠있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간신히 시작한 수업의 단원 주제는 'What do you want to be in the future?'. 아이들이 영어로 발화하는 연습을 하도록 오랫동안 하지 않던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영어 발화 훈련이 주목적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어떤 답을 들어도 실망하지 말자, 맘을 단단히 먹고 한명씩 돌아가며 질문을 했다.
장래 희망이 뭔지도 잘 모르겠고, 심지어 그걸 영어로 말을 해야하니, 아이들은 눈만 껌뻑이거나 혹은 그중에 엽엽한 아이는 어차피 문장 패턴 연습이라는 걸 눈치채고,
"I want to be a teacher." 진짜 자기의 꿈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제일 쉬운 문형과 단어를 골라 재빠르게 답하기도 했다.
2학년에 올라가는 반짝이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평소 조금 산만하고 선생님이 한마디 하면 열마디 스무마디 해야 직성이 풀리는 장난꾸러기인 그 아이는 나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더니 눈을 반짝이며 큰소리로 말했다.
"저는... 엄마를 안아주는 사람이요!"
아??? 순간 엄마 미소가 저절로 나오며 반짝이를 꼬옥 안아주고 싶어졌다. 수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문장을 영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가르쳐주었어야 했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반짝이는 엄마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그런데 지금도 엄마 많이 안아주니?"
"그럼요, 나는 할게 그거밖에 없어요!!!"
이번 봄이면 2학년이 되는 반짝이가 앞으로 4,5년 뒤 6학년이 되어서 혹은 중학생이 되어서도 같은 대답을 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엄마를 안아주는 것' 밖에 할게 없다는 반짝이에게 '다른 할 것'들이 너무 많이 생겨서 지금의 이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한동안 하지 않았던 질문을 아이들에게 다시 하려 한다. 이번에는 '너는 뭐가 되고 싶니?' 가 아니라 이렇게 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