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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내가 사라지다

세월에 묻혀 잊었던 나를 다시 불러내다

by 지혜여니

“엄마, 아빠 지갑에 모르는 여자 사진이 있어요.”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와 속삭이는 아이의 말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응, 그거 엄마 사진이야. 신혼여행 가서 찍은 사진이란다.”

“아빠는 두 여자랑 사는 거네. 좋겠다.”

아이의 말에 나는 웃었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 눈에는 지갑 속 여자와 지금의 내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아이의 눈은 진실하다. 상처되는 말이지만, 나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기에 그냥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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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나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낯설었다. 분명 내 얼굴인데, 익숙하지 않았다. 체형과 표정이 바뀐 것뿐인데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람처럼 어색했다.

예전의 나는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즐겼다. 셀카도 잘 찍었고, 사진 찍자는 말이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포즈를 취했다.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큼 뛰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스스로 만족하며 지냈던 젊은 시절이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부터 카메라 속에서 점점 사라졌다. 가족사진에서는 늘 구석으로 물러났고, 여행에서도 내 카메라는 아이들만을 향했다. 기록 속에서조차 나를 지워버린 셈이다.






아이 돌잔치 날, 사진사 앞에 서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가 중심이 되어야 했지만, 나는 무심코 뒤로 물러났다. 돌잔치용 의상 자체도 불어난 몸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조차 내 얼굴이 찍히지 않기를 바랐다. 웃고 있지만 사실은 숨고 싶은 표정이었다. 찍은 사진을 보면서도 내 모습이 너무 보기 싫었다. 예쁜 아이 모습만 간직하고 싶었다.



임신 시절 “임산부는 잘 먹어야 한다고, 아이를 낳으면 살이 다 빠지니 걱정하지 말라”던 소리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이가 태어나도 배만 남은 듯한 몸, 거울을 볼 때마다 한숨이 새어 나왔다. 모유 수유와 밤잠 없는 육아 속에서 화장은 사치였다. 렌즈 없이 화장도 안 하고 절대 외출 안 하던 나는 살며시 사라져 버렸다. 아이 챙기기도 바쁘니 머리를 질끈 묶고, 안경을 쓰고, 대충 입고 나가는 게 가장 편했다. 편리함이 습관이 되었고, 어느새 나를 가꾸는 일은 먼 기억이 되었다.



특히 요즘 아이 엄마들은 너무 날씬하고 예쁜데, 나만 이상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름 열심히 다이어트를 해서 살을 빼봤지만, 둘째가 생기면서 내 몸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반복했다. 결국 지금의 모습으로 고정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문 옆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장바구니엔 아이들 간식과 생필품만 가득했는데, 정작 내 몫은 없었다. 퉁퉁해진 몸매, 화장기 없는 얼굴, 어딘가 아파 보이는 표정, 축 처진 어깨. 그 모습이 내 눈에 박혔다. 거울보다 더 낯선, 현실 속 내 얼굴.

그 순간 문득 생각이 스쳤다. ‘내 가방에, 내 삶에, 정작 내가 없구나.’






거실에 걸려있는 웨딩사진을 보며 아이들이 놀리듯 묻는다.
“이게 진짜 엄마 맞아? 왜 이렇게 달라?”
나는 큰소리쳤다. “다 너희들 키우느라 그런 거야.”

하지만 사진 속 밝은 미소 앞에서 나 스스로도 작아졌다. 남편은 눈치 보며 여전히 “내 아내가 제일 예쁘다”라고 말하지만, 그 위로는 내 마음에 와닿지 않은 채 공중에서 떠돌다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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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 내 얼굴에는 주름이 자리 잡고, 기미가 내려앉고, 탄력은 서서히 흘러내렸다. 30대와 40대의 나는 너무 다르다. 안경을 벗으면 오히려 낯설고, 렌즈를 끼면 또 다른 가면을 쓴 것 같았다. 셀카를 찍어도 웃음은 굳고, 미소마저 어색했다.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거기 있었는데, 나는 자꾸만 나를 잃어버린 듯했다.


‘대체 나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옛 사진들을 꺼내보았다. 총명하고 밝은 미소가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모습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건데, 지난날만 바라보며 현재의 나를 거부하고 있었다.




“오늘이 가장 예쁜 순간이에요. 오늘을 기록하듯 사진을 찍어보세요.”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자세를 고쳐 잡고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빗었다. 브러시가 머리카락을 스칠 때마다 내 마음도 조금씩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파운데이션을 두드리고, 립스틱을 바르고, 조심스레 미소를 지어보았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셀카를 찍었다. 화면 속에는 어색하지만 환하게 웃는 내가 있었다.



그때 하교하고 들어온 아이가 다가와 말했다.
“우리 엄마, 오늘 왜 이렇게 예뻐 보여? 난 우리 엄마가 제일 예쁘더라.”

순간,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던 얼굴. 세월의 흔적이 덧입혀졌을 뿐, 나는 사라진 적이 없었다. 거울 속의 내가 속삭이는 듯했다. “너는 여전히 너야.”

그 말에 웃음이 번졌고,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긴 시간 동안 잊고 있었을 뿐, 나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오늘, 거울 속 나와 마주한 이 순간이 가장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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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작가]

지혜여니, 따름, 다정한 태쁘, 김수다, 바람꽃, 아델린, 한빛나, 새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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