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퇴근길, 어스름한 전철 안. 문득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언젠가 아버지의 얼굴이라 여겼던 그 인상이, 이제는 나의 일상이 되어 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이토록 무거운 이유는 무엇일까.
문을 열고 들어서면, 환한 아이들 웃음소리는 없다.
저마다의 방에 들어가 내일의 시험과 학원과 경쟁에 내몰린 채,
아빠의 귀가 시간보다 더 긴급한 ‘자신의 미래’를 살아가고 있다.
아내는 말없이 식탁에 기대어 있다.
아이들을 챙기느라 하루 종일 진이 빠진 얼굴.
저녁밥 한 상은커녕, "수고했어요"란 말 한마디도 낯설어진 지 오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누구에게도 반기지 않는 집의 문을 열고 들어와
소파에 걸터앉아 TV 소음으로 침묵을 덮는다.
잠시 뒤, 혼자 조용히 부엌으로 간다.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돌리고, 인덕션 위에 찌개를 데운다.
참치 한 캔을 따고, 김 한 봉지를 뜯는다.
그리고 꺼내든 반찬통. 어머니가 보내주신 파김치,
장모님이 손수 담가 보내신 알타리무김치까지 곁들이니
비로소 혼밥 한 상이 완성된다.
숟가락으로 퍼낸 첫 입의 햇반은…
왠지 모르게 꿀맛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허전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리운 손맛이 함께여서였을까.
일이 잘 풀리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조차도 녹록지 않다.
실적은 늘 기대치를 밑돌고, 상사는 성과를 내라며 압박한다.
동료들은 각자의 생존에 바빠 서로를 위로할 여유가 없다.
술이라도 한잔 나눌 친구가 있는 사람은 그나마 낫다.
나는 술도 못 마시고, 게임에도 흥미가 없다.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 저녁밥,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하루,
그 속에서 나는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다.
이야기하고 싶다.
나도 가족과 함께 웃고 싶고,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싶다.
하루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빠 왔어요!"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인지,
내가 아버지란 이유만으로 참아야 하고, 묻어야 했던 마음들을
누군가는 한 번쯤 안아주었으면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법을 배우지 못한 세대였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났고,
마음이 아파도 괜찮다고 말해본 적 없는, 감정 표현의 문턱조차 모른 채 살아왔다.
그래서 오늘도 말 대신 한숨을 내쉬며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아이 방에서 들리는 키보드 소리를 들으며
그저, 가족이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하루를 접는다.
누군가는 말한다.
“아빠는 괜찮아 보여.”
그래, 나는 언제나 괜찮아 보여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그저 묻고 싶다.
"나도… 괜찮지 않아도 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