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두 얼굴

증거, 인권,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고통에 대하여

by 이제이


1. 정의라는 이름의 역설

“정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 속 정의는 증거라는 형식 위에서만 춤춘다.
증거가 없으면 고통도 없다고 믿는 법정.
그곳에서 법은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금과옥조를 지키는 대신,
피해자의 삶은 서서히 부서져간다.




2. 무죄추정의 원칙이 만들어낸 침묵

형사소송법은 말한다.
"피고인은 유죄의 확정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이 대원칙은 민주주의 국가의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성채다.
그러나 그 성채의 벽 너머엔 늘 같은 목소리가 울린다.
“그 사람이 아니란 걸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이 맞다.”

사례 요약: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2020
정황은 분명했다. 아이의 공포, 거부, CCTV 속 움찔거림.
하지만 손찌검의 ‘직접 장면’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자
법은 "증거 불충분"이라는 방패를 들었다.
그 순간, 아이의 부모는 ‘법’이라는 이름의 침묵 앞에서
다시 한번 무너졌다.




3. 미필적 고의와 '의도 없음'의 틈

사례 요약: 데이트 폭력 중 사망 사건, 2017
수차례의 폭행, 심정지, 그리고 사망.
가해자는 “죽일 의도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법은 "미필적 고의는 있으나, 살인죄로 보기 어렵다"며
상해치사로 감형했다.
그에게는 6년의 형량, 피해자에게는 영원한 이별.

‘의도 없음’이라는 진술이
어떻게 ‘죽음의 책임’을 줄이는 데 사용되는가.
그 순간 법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합리의 탈을 쓴 회피의 얼굴이다.




4. 성인지 감수성과 법의 후진성

2019년, 대법원은 판결문에 처음으로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단어를 넣었다.
이는 피해자가 처한 성별적 불균형, 그리고 성폭력 특유의 비가시성과 구조적 침묵을 고려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현장에서는 피해자의 옷차림, 행동, 심지어 과거 성경험이 판단 기준으로 오르내린다.

사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 (2018)
1심 무죄 → 2심 유죄 → 대법원 확정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저항이 미약했고, 관계가 강제적이지 않았다”라고 판단.
하지만 2심은 ‘권력에 의한 침묵과 무력감’을 인지하며 유죄 판결.
성인지 감수성이 판결에 미친 역사적 첫 사례로 기록됐다.

▶ 이 사례는 ‘합의 여부’보다 ‘관계의 구조’가 성폭력 판단에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던졌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사건에서 법은 중립의 이름으로 피해자의 삶을 외면한다.




5. 공소시효의 윤리: 시간이 정의를 덮어버릴 때

법은 시간에 민감하다.
하지만 피해자는 영원히 그 순간에 갇혀 살아간다.

사례: 창원 여고생 성폭행 자살 사건 (2004)
가해자는 교사였고, 피해자는 수년간 성적 착취에 시달렸다.
자살 직후 유족은 신고했지만, 수사기관은 ‘자살’로 사건을 종결.
12년 뒤, SNS 제보로 재조명되었으나 공소시효 만료로 기소조차 못 했다.

공소시효는 범죄자의 권리를 보호하지만,
피해자에게는 다시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정의는 시간 앞에 굴복했다.

외국 사례 비교: 독일의 ‘홀로코스트 범죄’ 무기한 소추
독일은 역사적 반성을 기반으로 특정 범죄(반인륜적 범죄)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
한국도 아동 성폭력 범죄에는 공소시효를 폐지했지만,
그 외에는 아직도 '시간이 정의를 지우는 법'이 유효하다.




6. 법 앞의 평등, 그 이상이 필요한 시대

법은 "모두에게 평등하다"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진실은 이렇다.

피해자는 증거를 요구당하며,

가해자는 진술의 신중함을 보장받고,

판사는 형식적 정의의 테두리 안에 머물기를 선택한다.


▶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
‘유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무죄’라는 문장은 옳다.
그러나, ‘피해를 증명하지 못하면 고통도 무효’가 되어선 안 된다.




7. 법은 사람을 위한 것인가, 체계를 위한 것인가

우리는 법을 믿는다.
그러나 법은 인간의 창조물이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 불완전함이 만든 제도는, 누군가에게는 칼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굴레가 된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의 고통은 왜 늘 법정 뒤편에 앉아야 하는가?

고의의 미세한 경계, 성인지 감수성, 공소시효의 벽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법이 가진 두 얼굴 중, 우리는 어떤 얼굴을 더 오래 마주하고 살 것인가?



《함께 생각할 질문》

당신이 피해자의 가족이라면, 이 법은 과연 '공정'하다고 느껴질까?

무죄추정의 원칙과 피해자 보호 사이, 어디에 더 가중치를 두어야 할까?

우리 사회가 법의 중립성에 매달리는 사이, 놓치고 있는 인간성은 무엇일까?




에필로그 — 법이 가졌으면 하는 얼굴

나는 법이 완벽하길 바라지 않는다.
다만, 법이 누군가의 고통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란다.

“무죄입니다.”
그 한마디가 남기는 울림은 때로,
피해자에게는 두 번째 상처가 되기도 한다.

법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절차의 얼굴, 다른 하나는 사람의 얼굴.
우리는 그 둘 중 어느 쪽을 더 오래 바라보고, 믿으며 살아가야 할까.




《글을 마치며》
이 에세이는 특정 사건을 정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우리 사회가 이제는 ‘피해자 중심의 법 해석’,
그리고 ‘진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에서 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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