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낯선 것들이 두렵게 느껴질 때, 그것이 어떤 무언가의 기대와 희망을 저버릴 때, 삶의 어두컴컴한 순간 순간에 우리는 서로를 다독이며 잠을 청한다. 또는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으며 현실을 망각하려 한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 잊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또다시 낯선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는 어마어마하게 큰 일일 것이나 세상으로 보자면 그저 어제와 조금 다른 오늘의 차이점 때문이었다. 언제나 담담히 나의 선택을 받아들이기 위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 복잡한 고민은 그만 두라며 마음속으로 되네인다. 바로 그렇게 조용하게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길고 긴 과정의 시간들도 결국 끝이 날 뿐이었고, 새로운 일들 역시 무수하게 시작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저 가끔 변하는 것에 적응하는 일이 힘에 부치면 누워서 쉬기도 하고 혹은 집 근처를 서성이며 천천히 걸어 다니기도 하였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내 삶에 있어서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고 선택은 언제나 쉬웠다. 아니, 쉽게 가기 위해서 참 많이 버렸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날 신은 나에게 또 다른 삶을 제시하였고 나는 다시 새로운 것들을 감수하기 위해 그동안 감수했던 일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게 되었다. 이러한 번복 속에서 나는 본의 아니게 자잘한 이별들을 경험하였고, 씁쓸하고 떫은맛이 입에서 내내 감돌았다.
종종 세상에 나 혼자 남겨져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치하게도. 그 만큼 아무것도 아니니 걱정 말라며 다독이던 그 새로운 선택의 실체가 내 몸과 마음에 영향을 끼치자 나는 가끔씩 아랫입술을 꼬옥 깨물며 침묵할 뿐이었다.
한 개인의 경험과 기억은 결국 세상을 보는 방식을 만들어내고 내 그림 속에서는 모든 시작의 근원이 된다. 나는 언제나 내밀한 마음을 바탕으로 내가 보는 것들을 당신에게 보여주고자 그림을 그려왔다. 다시 말해서 평범한 풍경은 누구의 눈에 비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누구나 알고 있는 노래들도 듣는 사람에 따라 언제나 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외부의 이미지와 모티브를 바탕으로 내면을 드러내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하나씩 둘씩 그림을 완성하기 시작하였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림 속의 이미지는 분명한 광경을 비추다가 서서히 모호하게 변해 가면서 글자를 직접 그려 넣기도 하였다. 아마도 이미지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이 커져간다고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자신이 끊임없이 변화하며 살듯이 내 그림들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시리즈를 살펴보면 옛날 사진이나 평범한 도시 모습 등의 이미지를 주로 그려왔고 옛날 가요나 올드 팝 등 노래가사를 인용하거나 직접 제목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개인의 시간과 과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흐릿한 감정들에 명료한 모양을 만들어주고자 고민해왔다. 이러한 작업의 개념과 방향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 더 내밀해지고 작아지기를 꿈꾸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모두 어떤 시기라는 것이 존재한다, 나에게 한동안은 매우 크고 확실한 이야기들을 펼쳐놓을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내 삶의 변화와 함께 그런 면들이 조금씩 다른 크기와 형태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마치 과거의 어느 날엔 내 자신이 너무나 작아져서 뿅 하고 사라질 것만 같아 두려웠다면 지금은 나의 숨소리마저 다른 누군가에게 들릴까 조심하게 된다. 아마도 나는 한동안 넓고 넓은 외딴 곳에서 조그맣게 살게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