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Joo Lee Jul 18. 2016

11월

포기와 단념 사이

어제 처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했다. 바로 집 근처 대형마트였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큰 걸음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당분간 내 모든 삶은 그러할 것이다. 아이에게 맞춰질 것이다.

누군가 본다면 우스울지도 모르겠지만, 막상 딸을 낳고 보니 엄마된 죄가 있더라. 항상 미안한 것, 항상 마음이 아픈 것, 항상 내가 부족해 보이는 것. 나는 내 모든 시간을 아이에게 주지만 그래도 이 근원없는 원죄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그만큼의 기쁨도 있다. 설명할 수 없는 기쁨

아이가 덩그러니 누워서 파닥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10분만에 후루룩 마셔야 하는 내 밥도 미안할 지경이다. 아마도 이런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이런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조금 더 있다가 그려도 되겠지.

작업이라는 게 항상 모든 상황들이 완벽한 건 아니니까.

그래도 괜찮지, 나는 잘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11월에 잡힌 개인전이다.

서촌에 있는 이 갤러리는 내 수준에 비하면 무척 감사해야할 판이다. 더욱이 서울을 떠난지도 오래되었고 안면이 있는 갤러리도 없다. 부산에서 먼저 소개받아 알게 되었는데 아는 선생님들이 끼어 있어서 조금 더 신경써야 할 상황이다. 그럼에도 나의 현재는 열악하기 그지 없고 남편까지 살 떨리게 바쁘다. 신작도 거의 없고 앞으로도 그림에 집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얼마나 많은 고민들이 하루종일 나를 스쳐 지나가는지 표현할 수 조차 없다.

도무지.


욕심을 부려볼까, 엄마한테라도 어거지를 써볼까. 그렇게 한다고 이 상황에서 제대로 된 전시가 나올까. 그냥 대충 구색이라도 맞춰 할까. 어차피 부산에서 전시했던 예전 그림들은 서울에서 한번도 선 보인 적 없으니까. 다들 그렇게 하는데 뭘. 유난히 나는 신작에 집착했으니까. 그리고 없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눈 딱 감고 해볼까. 어쩔까.

그런데 몸이 너무 아파. 왜 이렇게 찐 살은 빠질 생각을 하지 않고 하루하루 못생겨지고 푹 퍼진 아줌마가 되어가는 걸까. 이런 몰골로 나선 다는 게 부끄럽다. 내 욕심에 맞게 준비하지도 못할 전시인데, 이래저래 민폐만 끼치는 게 아닐까. 도대체 무엇이 맞을까.

아이는 괜찮을까...

그럼 나는 괜찮을까...


아직 고민 중이다. 이 전시를 접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대부분이다. 너무 피곤하고 지쳤거든. 그런데 아무도 너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네. 다들 그런다, 결국 할꺼라고, 잘 할 수 있을꺼라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말이지. 아니, 아닌가,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건가.

작가의 이전글 HE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