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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Joo Lee Nov 07. 2015

프라이팬

5. 놔주기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 이거 버려야겠지? "

남편의 손에는 프라이팬이 들려있었다.

프라이팬의 바닥은 손상되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녹이 슨 것처럼 주홍빛까지 돌았다.

그 프라이팬은 내가 결혼 준비로 한국에 가 있는 동안 엄마가 사주신 혼수 용품 중 하나였다.

홈쇼핑을 보다 프라이팬 세트를 파는 것을 보고는 그냥 혼자 말로 " 아 저거 예쁘다" 하니  엄마는 "예뻐?" 하며 바로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해주셨다. 그렇게 나의 대부분의 주방용품을 엄마가 혼수 용품으로 해 주셨다.

나는 남편의 물음에 "그러네" 하고는 주방 카운터에 그 프라이팬을 올려 놓았다.

사실 남편이 그 프라이팬을 버리자고 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남편이  버려야겠다고 내 놓으면 나는 고스란히 다시 찬장에 다시 집어 넣고는 했다.

이번에도 난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대답으로 얼버무려 버렸다.

그렇게 며칠 그 프라이팬은 주방 카운터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는 내가 그 프라이팬을 사용 안 할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남편이 그 프라이팬의 손잡이를 분해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놀라 " 그걸 왜 분해해? " 소리 지르듯이 신경질적으로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분해해야 버리기 편하잖아" 하면서 순식간에 손잡이를 떼어 버렸다.

남편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쉽사리 버리지 못할 거라는 것을 그래서 내가 버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손잡이를 떼고 나를 대신해 버려 주었다.

나도 언제까지 망가지고 쓰지 않는 그 프라이팬을 안고 살 수는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내 손으로 버릴 수가 없었다. 남편이 프라이팬을 버리고 나서 며칠 동안 울적해지는 마음을 떨구어 낼 수 없었다.

그렇게 엄마와의 추억, 기억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버려지고 잊혀버리는 그런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언제쯤 하늘 나라에 가 있는 엄마를 편히 놔 줄 수 있을까

아마 난 평생 낡고 오래된 프라이팬을 간직하려 했듯이 평생 엄마를 놔주지 못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한테 잘 가라고  마음속으로 수백번을 얘기하곤 했다.

하지만 쓰지도 않는 프라이팬 하나 못 버리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 아직까지 나에게 더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 작은 것 하나 엄마와의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붙잡고 의미를 부여한다고 엄마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잘 알면서 놔주지 못하는 나 자신이 미련스럽기까지 하지만 나에게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자유롭게 날 수 있게 엄마가 나를 둥지에서 떠나 보냈듯이

엄마가 나비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아 다닐 수 있게 놔주어야 함을 잘 안다.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 엄마 안녕. 잘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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