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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김 Apr 17. 2017

내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

-intro


 오랜만에 글을 쓴다. 글을 전문적으로 직업으로 삼아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언제나 내 곁에는 글이 있었다. 글이 있어야 마음이 편했고 생각을 보다 명료하게 할 수 있었다. 글은 그렇게 내게 위안이었고 각성이었고 기댈 곳이었다. 글을 그렇게 소중히 여기지만 글을 쓰는 행위는 오랜만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글을 읽는 행위에 멈춰있었다.


 언제부터 글을 읽기만 했을까? 뚜렷한 시점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글쓰기에서 도망쳤다. 글을 쓰는 게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누구한테 보여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평가받는 것도 아닌데 글을 쓰는 게 버겁고 두려웠다. 장기가 뒤틀리는 거 같고, 온몸이 간지럽고, 뒷 목이 뻣뻣하게 굳는 느낌이었다. 내가 쓴 글을 보며 몇 번의 구역질도 했다. 벌거벗은 나를 마주하는 거 같고, 그 모습이 너무 추하여 격하게 외면하고 싶었다. 자괴감, 열등감, 분노 복합적인 감정이 나를 지배했다. 글을 쓰면서 부족한 자신을 뼈저리게 느끼고, 그 사실에 비관했다. 어떤 노력을 통하여 글쓰기 실력을 향상할 법도 한데,  나는 당장의 느껴지는 물리적인 고통 앞에 무릎을 꿇고 서둘러 도망쳤다.


 그런 내가 이렇게 다시 글을 쓴다.


 글을 쓰지 않으면서 몇 가지 느낀 게 있다. 첫 번째는 글을 쓰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것이다. 늘 가슴속에 형언할 수 없는 불안감이 있다. 무언가 굉장히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기분, 몸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일상의 행동을 하다가도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텅텅 비어있는 느낌이다. 인지조차 제대로 못할 때도 있다. 두 번째는 말을 제대로 못 한다는 것이다. 생각들을 글로 써 정리해 표현하는데 익숙했는데, 그 글을 쓰지 않으니 생각들이 뒤엉켜 언어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말을 하면서도 주제와 어긋나 이질감이 생기고 논리 정연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말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자신'과의 대화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글이라는 것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감각들에 대한 번역이다. 이 번역들을 하기 위해서는 본인 안에 일어나는 반응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흡사, 내게 글을 쓰는 것은 명상과도 같은 것이다. 아직은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정의할 수 없는 무수한 추상적인 것들이 형체를 이루고 존재가 되어 안에서 밖으로 토해내는 것이다. 이렇듯, 쓰기가 없는 내 삶은 평범할 수 없었다. 난 그저 평범하고 지극히 보통의 일상을 보내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다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단, 다시 글을 쓰면서 이전의 과정을 또 겪을 순 없다. 창작의 고통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이 내 삶을 망가뜨리게 할 수는 없다. 이전과는 다른 글쓰기 접근이 필요하다. 기존에 나의 글쓰기 태도는 아름다움의 추구였다. 그것이 미적으로 볼 가치가 있어야 하고 타인이 읽었을 때 현혹되는 부분이 존재해야 했다. 그러다 보면 글은 점점 미화되고 가장하게 된다. 본질과는 멀어지는 것이다. 더 이상 추해질 수 없다. 이제는 다른 접근을 해보려 한다. 이 매거진의 제목인 '의식의 흐름'이다. 말 그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보려 한다. 생각나는 대로, 순서에 억압받지 않고 떠오르고 느끼고 반응하는 대로 글을 쓸 것이다. 글이 다소 어지러울 수 있다. 그러나 상관없다. 이번 글쓰기 목적은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니까. 내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글을 쓰면서 나는 치유되고 싶다. 언젠가 다가올 보통의 일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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