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 혹은 은빛 모래
제주의 눈은 조금 더 단단해
영하로는 거의 내려갈 일이 없는 제주.
덕분에 코털이 얼거나 머리 쨍하게 아플 추위는 거의 없는데 눈만 오면 이 곳은 패닉상태가 된다.
처음 제주에 내려왔을 때 내 직장은 제주서남쪽 오설록 옆에 존재했기에 결코 평화롭지 않은 평화로라는 길을 아침 저녁으로 오갔었다. 이 평화로가 왜 평화로울 수 없냐고? 바로 생각보다 높은 지대에 처억 걸쳐있기 때문이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안개가 잘 맺힌다. 안개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1월, 어쩌다 한번 내리는 제주의 눈은 낮에는 애매한 온도로 녹기 일쑤이다. 문제는 저녁, 햇님이 지평선 아래로 잠들러가면 이 지대 높은 평화로는 그만 꽁꽁 아이스링크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평소라면 40분이면 올 길이 그 날 만큼은 명절 귀성길이 된다. 두 시간을 버스에 갇혀있으면 달리 할일은 없고, 쉬지 않고 하늘이 굵은 눈방울을 내려대는 날이면 길 위로 부르르 날리는 흰 알갱이들을 보며 꼭 모래 같다 생각했다. 은빛 정령이 사는 사막에 날리는 모래.
어째서인지 제주의 눈은 소복하지 않다. 그들은 독립적이다. 잘 뭉쳐지지 않아서 서로 거리를 두며 흩날린다. 서울에 있을 적엔 눈은 정적이고 고요한 소재라고 생각했는데 제주는 그렇지 않다. 언제나 휘몰아치고, 지평에 도달해서도 가라앉지 않고 늘 영혼처럼 헤메인다. 그리고 맞으면...
아프다.
정말 아프다.
꺼지라고 누군가 뿌리는 굵은 소금이 이런 기분일까.
오늘도 연신 눈이 온다.
같이 일하는 선하고 조금은 장난스런 동기 아이의 차를 얻어타고 내려오면서 차창에 부딪히는 눈 소리를 들었다.
빗소리도 아니고 눈소리.
지금도 눈은 꼭 팝콘이 터지듯 베란다 창을 두드리며 피어오른다.
그래. 이게 제주도지. 옅은 눈에 차들은 사고가 나고, 나는 스노우 볼 속 인형이 된 기분이고. 그러다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속절없이 눈은 사라지고.
썰매를 타러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