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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um Apr 11. 2021

자유 의지

01_ 심연에서 벗어나고 싶다

2003년 선풍기 바람으로 여름을 나고 한 해가 소리 없이 지나가는 즈음 침대 밑으로 꺼져내려 가는 나의 몸을 느끼는 건 순간이었다. 서울에 올라온 지 1년이 조금 넘은 어느 날 다니던 회사에서 잘리고 난 옥탑방에서 무기력함에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불투명한 미래로 불안했으며 초조함은 날 언제나 현실을 부정하면서 잊고 싶은 마음에 잠을 자게 만들었고 그 시간만큼은 잊게 해 주었다. 계속되는 사회에서의 거절은 날 좌절시켰고 20대 후반의 난 살고 싶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몰랐었다. 가족이라고 나를 공감해주거나 위로해주는 사람은 없고 나 조차도 이런 나의 상태를 포기하려는 찰나 내 몸이 꺼짐을 느끼고 그 뒤에 일어날 일이 얼마나 어둡고 끔찍한 일일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심약한 나의 정신이 모든 것이 어둠에 구속될까 봐 겁을 내고 있었다.

동공이 풀리는 것이 서서히 느껴지는 시간들이었다. 난 4평짜리 내 방에서 죽어가는 나를 가여워하지도 않았다. 반복된 무기력은 그렇게 날 심연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그러다 희망도 없는 지푸라기 같은 생각과의 타협을 마지막으로 하기로 하였다.

죽은 자도 살리신 예수님을 알아보는 것을 마지막 나에게 제안을 하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 2000년 전에 살아계셨던 예수님을 찾았다.

컴퓨터를 켜고 나의 시선에 들어왔던 요한복음 강해를 듣기 시작한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말부터 무슨 말인지 전혀 몰랐기에 나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부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감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감정뿐만 아니라 온 감각으로 ‚말씀이 하나님과 계셨고 곧 하나님이다’라는 말을 받아들여 믿는 것이 중요하였다. 나의 머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던 믿음의 모든 감정과 이성을 총동원해서 말씀을 보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아니면 안 된다는 막연한 믿음도 있었기 때문에 살릴 수 있는 생명을 갈구하듯이 난 믿고 싶었다.

말씀은 나의 마음을 서서히 어루만져 주었고 나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만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나뿐인 독생자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그것이 나의 머리로는 믿기지가 않던 것이 믿어지기 시작하면서 나를 위해서 그분이 오셨다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면서 지금도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에게 살아계신다는 것은 여타 다른 종교하고는 너무 다른 것이기에 의심을 하면서도 난 계속 이것이 진리이기를 바라면서 읽었다. 왜냐하면 난 지금 죽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이 음습한 기운이 내가 살아있을 때 오는 거라면 분명 생명도 내가 느낄 수 있는 범위에서 올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하지만 실낱같은 희망같은거였다.

나의 생명을 난 너무 하찮게 여기었기 때문에 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당신이 살아있다면 나를 살려보세요. 난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데 나를 사랑한다면 당신 뜻대로 나를 살려주세요.

처음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다.

난 사회와 가정의 외면과 사랑의 배신으로 인한 거절, 그로 인한 죄책감과 부모의 울타리가 없음에 대한 박탈감 때문에 나와 나의 삶을 미워하고 나를 어떻게 돌봐주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희로애락으로 삶을 사는 것으로는 나의 갈증을 채우지를 못하였고 선과 악을 만든 주체자가 누구인지 궁금했었다. 인간이 어떻게 태어났고 죽음 이후에 영혼이 머무르는 곳이 궁금했었다. 물론 학습된 진화론 있었지만 동물이 인간이 되었다는 이치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명을 탄생시킨 인간만이 이성과 의식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서 육체적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느끼고 고차원적인 사고를 통해 신과의 교류를 할 수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인간이 태어나도록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진리를 갈구하며 찾고 있었다.

그래야만 어그러진 나의 실체를 대하면서 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실체는 나 자신도 나에게 돌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태초의 인간이었던 시절 간교한 뱀의 술수로 이브의 유혹에 아담은 선악과를 먹게 되면서 인간의 원죄가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른   먹어도 좋지만 선악과를 먹지 말라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다. 인간은 죄에 눈을 뜨고 그때부터 부끄러움을 알게 되면서 동산에서 쫓겨나게 된다.

원죄의 뿌리로 인해 이 세상은 마귀 즉, 어둠이 지배하게 되었고 세상에 사는 인간은 어둠이 어둠 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유 의지로 창조되었지만 자유 의지로 인해 죄성을 가진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완전하신 하나님은 인간을 너무 사랑하사 2000년 전 1세기 자신의 아들 독생자 아들인 예수를 처녀의 모태로 잉태하는 기적 같은 사건으로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못 박힐 때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에서 공생애로 있다가 부활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뤘다.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의 피로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사건은 우리의 연약함을 위한 사랑의 징표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내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성령님을 우리 안에 오게 해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한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였다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 모든 죄를 회개하고 씻어내는 사함(없어짐)으로 거듭나(다시 태어남)는 것이다. 새로운 자아로 태어났으니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난 이것을 믿어야만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믿었다. 말씀으로 어둠에서 빛을 만들고 궁창을 만들어 그 중간을 가로질러 하늘과 땅을 만들고 땅에서 나는 곡식과 열매 나무를 만들고 하늘의 비로 열매가 자라게 하는 분이 왜 날 살리지 못하는가를 의심하지 않았다. 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죄의 형태는 우리가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고 교묘하기까지 해서 허다하지만 나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씻어주는 구원의 세계를 나는 붙잡았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죄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 동생을 때린 것부터 언니와의 잦은 싸움 커가면서 행한 무수한 나의 죄들은 눈덩이처럼 많아졌다.

그러다 내가 나의 삶을 끝내려고 하는 나의 의지 또한 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생명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태어난 귀중한 생명인데 마음대로 날 해치려고 하는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빌었다.

나의 어리석음과 무지로 빛도 보지 못하게 한 생명을 버렸다는 이유로 나의 죄책감을 사해 달라고 절규를 하였고 난 기절하다시피 또 나의 손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그 순간 나의 입이 벌어지면서 마구마구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방언 기도)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난 이것이 빛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난 나의 몸이 바닥에 꼬꾸라져 있지만 나의 몸과 영혼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난 다음에야 나의 입은 다물어졌다.


다음날 목사님을 찾았고 난 그것이 군대 같은 어둠의 귀신들이 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빛은 나에게 오신 성령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하나님이 귀신들을 몰아냈음을 알게 되었다.

신의 섭리를 체험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예전 다른 실체를 경험한 것이 기억이 났다.

난 예전 힘들 때 무속인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무속인은 내 안에 있는 더러운 귀신이 있었던 자리들을 용하게도 다 맞췄다. 정확하게 나의 죄를 말하였다. 죄는 죄를 알아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에게 하는 말은 무속인이 될 거라는 것이다.

귀신을 보는 그런 무속인의 삶을 받아들이지도 못했고 그런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은 더욱 없었기 때문이었다.

난 이 말을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 난 어둠의 영역을 몰아내는 것이 완전한 선만 할 수 있는 것임을 막연히 느끼고 하나님을 믿기까지의 나의 몸과 영혼이 그저 어둠의 인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 그런 존재를 믿기 시작했고 그런 하나님께 질문을 하였다.


날 사랑한다면 이런 고통을 없애달라고 그리고 왜 이런 고통을 인간에게 허락하신 거라며 따지듯 질문을 하였다. 하지만 난 그 답을 알지 못했다.

가장 선한 존재인 하나님은 그저 나의 피폐해져 버린 영혼을 위로해주고 만져주고 나의 아픔이 연민이 되지 않기 위해 조금씩 심약한 나를 바로 세우고 있었다.

두려워하는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상처를 보듬어주고 나의 피난처까지 되어주시는 울타리를 놓칠 수가 없었다. 난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분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 지나쳐온 모든 고통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게 하려는 거대한 필연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 영혼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고통이라는 것을 주지는 않지만 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함도 사랑하사 어둠이 주는 죄에서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된 것이다.

인간은 사랑을 알지 못하면 어둠에서 머물 수밖에 없는 그래서 의식과 무의식을 종식당하고 기쁨도 모른 채 살게 되면서 어둠이 원하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둠에서 구원에 이르기까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분히 족히 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로 인해 고통의 척도를 잴 수 있음을 알았다. 하나님의 속성을 닮으려 인간의 자아를 양도하는(내려놓음) 고통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양날의 칼날이다. 하나님의 속성을 닮으려는 자유의지는 순수한 순종일 것이고 그분의 한계가 없는 사랑을 배우는 의지일 것이지만 반면 무지하다면 심연의 고통에 압류당하는 어리석음을 가지는 두 양끝의 칼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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