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적 마무리는 아직야
먼저 꽃집에 가서 화분하나를 사서 캠퍼스에 흑백으로 그림을 그렸다. 식물들을 바람부는 공간에 가지고 가서 살랑거리는 잎사귀를 비디오로 촬영하였다. 그려진 캠퍼스를 벽에 걸어두고 빔프로젝트로 그 캠퍼스 위에 영상을 그대로 쏘아서 반복적으로 흑백과 컬러의 조합을 조형화시켰다.
2016 우연과 운명사이의 현상
인간의 탈은 언제나 그들의 인생을 한 곬으로 규정지으려는데 있다.
회화와 영상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여러 감각이 조우되면서 반응하는 한 순간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먼저 흑백으로 캔버스에 그리고 영상으로 그림위에 비춰서 오버랩시켰다. 영상을 통해 흑백 그림위로 비춰지는 과정에 자연컬러와 움직여지는 모습은 감각으로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되는 현상이다. 의식은 빛과 같이 기억의 반향을 불러온다. 예상되지 않은 이벤트는 기억에 오래남듯이 여러감각을 자극하는 현상들이 작품에 시그마이다. 무의식과 의식의 차이에는 어떤 현상들이 이루어지는가? 상황은 우리가 통제할수 없는 어떤 힘과 능력으로 이루어지는데 인간의 자유의지인 선택의 연속이 우연과 필연의 체계를 형성한다. 정신적 사고가 변형될수 있는 무의식의 과정또한 인간의 자유의지가 직관적으로 표현될수 있다. 무의식과 의식을 연결하는 지점에 인식하고 분극시키는 파장된 에너지의 중립적 신호는 이 작품의 미학적 관점이다. 무의식 사고들의 구획은 의식의 무리들로 전치되려는 에코이다.
흑백의 무리들은 기억의 방으로까지는 들어가지 못하다. 기억의 방은 빛과 같은 컬러들의 놀이공간이다. 이들이 기억의 방 하나하나를 채우며 산다. 이 작품은 인간의 사고방식의 한계를 보여준 개념미술형태이다.
이 작품이 나오기 전 휴학을 할 정도로 아팠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의 정신과 육은 내가 원하지 않는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처음의 손떨림은 급기야 나의 사고가 막혀버릴 정도까지 가는 이상한 증상으로 휴학을 하게 되었다. 나의 내면만 들어다보면 안된다고 나에게 중간중간 재미있는 작품을 해봐! 라고 나의 교수님은 예전 애정을 담은 조언을 하였다. 왜냐하면 나의 작품 대부분은 너무 많은 감정을 요구하는 에너지 방출로 인텐시브하여 감정이 한꺼번에 바닥으로 내리칠 것을 염려하여 다른 예술가들을 말해 주면서 나의 뇌피셜에 대한 걱정까지 해주시는 그런 교수님이셨다.
교수님은 나의 작품세계를 항상 오픈마인드로 바라봐주셨다. 한국과는 다른 독일의 창의적 교육은 언제나 개인의 생각과 작품 과정의 다양한 미학적 관점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개인의 잠재력을 중요시하여 기다려주는 철학을 바탕으로 교육을 한다.
병원을 못가고 혼자서 멘탈관리를 하자고 무작정 쉼을 선언한다.
나의 작품으로 나의 숨어있는 잠재력을 발견하면서 내안의 상관없는 존재(부정적인 것으로 인한 유익함을 막는 모든것)들을 작품을 통하여 치유를 하였고 나의 대상을 바라보는 가치관과 내가 바라보는 관점과의 변곡점을 스스로 꺼내어서 관찰하는 그런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료들은 죄 학교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유학생의 고초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지라 일하면서 힘든일이지만 몸을 움직이면서 언제나 자연스럽게 웃을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재미”라는 것은 지금 나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대상이다.
난 항상 나 스스로 나의 멘탈을 관리할 수 있을꺼라 자신했지만 지금의 난 그냥 바보같았다.
책상이나 커피숍에 앉아 어딘가에서 영감이 문을 두드리면 난 앉아서 얼른 수첩을 꺼내 거침없이 한두장을 나의 사고체계를 미학적 관점을 기준으로 유연하게 써내려갔지만 지금은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들과의 소통 자체가 불가능함을 느꼈다.
학교에서의 오는 메일을 보지도 못하고 우편함에 돈 내라는 여러 서류들을 뜯지조차 못하는 것이다.
수차례를 시도해봤지만 잘 안되니 일단 나의 사정을 학교에 솔직하게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였다. 휴학처리가 되었고 나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있음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원인을 파악하기 시작하였다.
휴..
아르바이트를 하는건 일주일에 3일 정도인데 몸이 힘들어 고장 날 일은 없었다. 과거 한국에 있을때 일요일을 제외한 평일을 디자이너로 항상 일을 했고 여차하면 언제나 야근과 밤샘을 밥먹듯이 하였기 때문에 일 그자체는 힘든게 아니었다. 남들도 나와 같이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작업과 전시활동도 겸해서 n잡러의 생활을 독일에서 열심히 했었기 때문에 육체의 지친 노동때문은 아니었다.
타국생활의 에너지 충전방식을 의심해보기 시작하였다. 문화적 차이에 의한 독일 생활의 매일매일은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니 어느정도 해결하는것은 나아졌을 지는 몰라도 너무 많은 과도한 일의 소화하고픈 나의 의지가 순간에 바닥을 친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는 서류를 들고 친구들에게 가지고 가서 뜯어달라고 했던 적도 있었다. 죄 돈 내라는 서류들 뿐이고 새로운 문제는 수도 없이 발생되는데 졸업을 하기 위한 에너지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240학점을 따내기 위해 제출해야하는 독일어와의 싸움은 그 강도가 졸업할때쯤 되면서 더 많은 양으로 고스란히 다가왔고 학교에 제출건들은 완성도를 높여야지만 점수를 받을 수 있고 졸업을 할 수가 있었다.
“선아, 정신 차리자. 넌 할 수 있어. 이제까지 잘 버텨왔고 욕심내지 말고 쓰면 되는거야.”
길을 걷다가도 난 나를 위해 언제난 나에게 응원을 해주었다.
나의 수첩엔 끄저끄적 적힌 세상에 모든 상황들은 우연이 없다고 믿기때문에 우연과 필연에 대한 작품을 담아보자고 예전부터 구상을 하고 있었다. 구상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본격적으로 자연과 인위적인 모티브를 대상화시켜 조합하고 또다른 나의 작품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전시 발표가 끝나고 교수님은 아무말도 안하고 갑자기 사람들이 많은 앞에서 꽤재재한 나의 볼에 뽀뽀를 하는것이다.
너무 당황했지만 바로 나온 박수 소리에 교수님의 애정의 표현력이 너무 직접적이었구나라고 나도 모르게 머쓱해했다.
“선, 다시 돌아왔구나. 하지만 조형적 마무리는 더 잘했어야 했어. 비디오 편집도 더 선명하게 하고 벽을 깨끗하게 하얀색으로 칠을 했어야해. 담부터는 마무리에서의 프로페셔널함을 잊지마.”
난 이 작품으로 나의 다양한 사고체계는 예술적 감각으로 승화시키는걸 너무 좋아하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앞으로는 좀 더 가벼운 주제로 자연과의 소재를 더 다루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2016 독일의 조용한 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