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를 지켜라
COVID-19로 학교도 카페도 모두 문 닫은 이 상황 속에서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나는 아침에 일어난 후, 그리고 해 지기 전 발코니에 나가 잠시 바깥공기를 마스크 없이 편안히 마시는 시간을 꼭 가지려고 한다. 시멘트 바닥에 이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만의 발코니가 있다는 건 아주 호화로운 삶인 것 같다. 빨래를 말리기도 하고 냉장고가 꽉 찼을 땐 맥주도 놓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 하지만 이 공간에 매일 침입자가 찾아와서 요새 골머리가 아프다. 무슨 비둘기가 11층까지 날아다니는지, 나 원참. 요 침입자는 우선 찾아와서 "꾸루 꾸루루" 소리를 내다 볼일을 보고 밖에서 내 방 안을 살펴보다 다시 날아간다. 이 볼일 보는 부분이 제일 큰 문제인데, 이것을 제대로 치우지 않으면 시멘트가 부식되거나 잘 지워지지 않아 이사 나갈 때 나의 보증금이 깎일 우려가 있어서이다. 처음 일주일 간은 비둘기가 보이면 바로 달려가 발코니로 나가는 척, 문 여는 척, 문을 살짝 열고 가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요놈의 침입자들을 쫓아냈었다.
대부분의 침입자들은 저 세 가지 방법을 동원하면 바로 다른 발코니로 향하는데, 하루는 발코니 구석에서 졸고 있는 비둘기 한 마리를 발견하여 같은 방법들을 써보았지만 미동도 하지 않아 순간적으로 발끈하여, 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두고보자, 라는 마음으로 용기 내어 발코니로 직접 나가 내쫓았다. 비둘기도 놀랐는지 갑자기 날아가는데 나에게 돌진하듯 날아가 얼마나 심장 떨리던지. 그렇게 보내고 처음에는 놀란 가슴 부여 잡고, 해냈다! 싶었다. 그 기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바로 후회로 바뀌었다. 그렇게 미동도 하지 않았다는 건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 아니었을까, 아픈가, 괴롭힘을 당했나, 너무 피곤한 하루를 보낸 건가, 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아플 때, 너무 힘든 하루를 보냈을 때 누군가 나에게 당장 저리 가라고 한다면 얼마나 슬플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주일 내내 어떻게 하면 비둘기가 발코니에 안 오게 할 수 있을까를 머리 싸매고 고민하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고민 끝에 마음을 바꿔 먹기로 하였다. 내가 사용하는 시간을 제외한 다른 시간은 침입자였던 비둘기에서 잠시 놀러 오는 방문객 비둘기로 받아들이고 3일에 한 번 씩 발코니 대청소를 하는 것으로. 그리고 다시 일주일이 지났는데 아직 그때 미동도 하지 않던 비둘기는 찾아오지 않은 것 같다. 언젠가 만나게 되면 내가 미안했다고 꼭 인사하고 싶은데 다시는 안 오려나.
방문객 여러분들, 너무 지저분하게 사용하지 마시고 살짝쿵 쉬시다 돌아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