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글맹글 Dec 30. 2020

독일 쾰른에서의 연말연시

COVID-19와 함께 2021년을 맞이할 줄이야

작년 12월 31일, 그러니까 2020년의 첫 날을 맞이하는 밤 11시에 나는 쾰른 돔으로 새해 불꽃을 보러 갔었다. 쾰른 돔과 라인강이 보이는 곳에서의 불꽃놀이라니, 말만 들어도 로맨틱하게 느껴졌지만 어두운 곳을 무서워하는 것과 쾰른에 도착하고 3일이 지난 어느 날, 중앙역에서 술 취한 남자분에게 갑자기 폭력과 함께 이루어진 인종차별을 겪었던 터라 나갈지 말지 많이 망설였다. 그래도 그 당시 같이 살았던 중국인 여자분과 함께 가는 것이라 혼자가 아니기에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따뜻하게 입고 집을 나섰다.


폭죽과 함께 찍은 사진들


1월 1일 0시 정각부터 폭죽이 시작할 것이라 생각하고 나갔건만 11시 30분쯤부터 이미 폭죽은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정말 어디를 가나 바글바글 하였다. 돔 근처에는 경찰이 이미 무장하여 있었고, 지나가면 안 되는 곳, 한 방향으로만 갈 수 있는 곳 등, 나름 질서가 만들어져 있었다. 무서웠던 것은 사람들이 폭죽을 아무 데서 터트리기 시작하여 이 불씨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과 눈 앞에서 바로 앞에 있던 사람의 정수리에 폭죽 불씨가 떨어져 엄청 아파하는 것을 본 것이었다. 술을 먹고 헤롱 거리면서도 엄청 아파하던데, 다음 날 술이 깨고 잠에서 깨면 진짜 말도 못 할 정도로 아프겠다, 생각하며 패딩에 달려있는 모자를 꾹 눌러쓰고 다닌 기억이 난다. 거기다 같이 간 친구가 폭죽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주려고 하여 그 친구와 조금 떨어져서 서 있으면 이상한 남자들이 근처에 다가와서는 누가 봐도 자신들의 사진 앵글에 나를 포함하여 함께 찍으려고 하려는 것이 보여 다른 곳으로 옮기면 또 따라와서 같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였다. 왜 아무런 말도 없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것일까? 동양인을 원숭이만큼 잘 못 보는 동네도 아닌데 왜 그럴까? 쾰른, 독일에서는 아주 국제적인 도시로 외국인들을 가장 잘 포용하는 도시라고 어느 독일인이 설명을 해주었었는데, 이런 일을 또 겪게 되니 나에게는, 여기서 말하는 외국인이란 독일을 제외한 다른 유럽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지칭하는 뜻으로 밖에 해석이 안 되었다. 그래도 이 불꽃들을 보며 2019년에 겪은 인종차별, 에스컬레이터에 서 있는데 갑자기 옆에 다가와서는 밀치며 팔꿈치로 나를 때리며 독일어로 "너 독일어도 못 하지? 독일어도 못 하는 게 왜 여기 왔어?" 라며 에스컬레이터가 끝날 때까지 어디 가지도 못 하게 밀어붙이며 욕하던 아저씨, 지나가는 나를 보고는 갑자기 다가와 큰 소리로 "웍!!" 하고 놀라게 하고는 자기들끼리 키키 거리며 웃던 중학생 여자 두 명, 그리고 집 문제와 비자 문제 등 당시에는 힘든 일이 겹치고 겹쳐 있었던 시기였기에 2019년과 함께 나를 힘들게 하던 사건들과 일들이 모두 잘 해결되기를 바랬던 것 같다. 그와 함께 올해는 쾰른 돔 쪽에서가 아닌, 조금 일찍 집을 나서서 쾰른 돔에서 다리 건너 건너편에서 돔과 함께 불꽃을 구경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날이 심해지는 COVID-19로 인하여 독일은 전국적으로 새해 폭죽 행사가 취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점에서 폭죽을 사고파는 것 또한 금지가 되었다.


사진으로는 잘 안 담겼던 폭죽


이제 며칠 뒤면 2021년이 온다. 2020년은 정말 1년 내도록 COVID-19로 인하여 학교도 계속 문 닫혀 있었고, 도서관도 거의 가지 못 하였고, 진행하던 논문 발행도 미뤄지는 등, 1년 전체가 그저 사라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논문을 읽고 쓰는 것은 계획보다 많이 늦어져 버렸지만, 그래도 생각지도 못 하게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오래 가질 수 있었고, 공용 공간이 많아 위험과 불편함이 느껴졌던 옛 집에서 혼자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집으로 이사도 할 수 있었고, 비자도 2년 연장을 받을 수 있었다. 새롭게 좋은 분들도 만나고 이렇게 브런치도 시작하고, 식물도 기르게 되었다. 모든 게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이 상황에서도 좋든 나쁘든 시간은 흘러간 것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기도 하고, 꾸준히 해 오던 것을 그만 두기도 하면서 말이다. 2019년 연말에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던, 어떠한 표현도 불가능한 2020년을 겪고 나니, 2021년은 어떨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저 막 시작된 COVID-19 백신이 부작용 없이 효과적으로 이 사태를 종식시켜 주기를 바라는 것과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 나가는 것, 그리고 박사 논문을 적은 글자라도 매일 작성하는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갖추는 그런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린 대추? 그게 뭐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