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글맹글 Mar 21. 2021

길을 걷다 황동판을 보신 적이 있으세요?

독일에 오시면 길바닥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지난주부터 봉쇄 속에서도 조금씩 가게도 열리고 사람들도 밖으로 더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에 만 명 안팎이던 확진자가 다시 하루 2만 명이 넘어 버렸기에 부활절이 지나면 또다시 가게들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오랜만에 열린 가게가 기뻐서 그런지, 아니면 나와 같이 곧 다시 닫힐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가게들은 더욱더 세일 광고를 하고 사람들은 줄을 지어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고 몰려들기만 한다. 아무리 예약을 미리 해야 하고, 같은 시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수를 제한한다고 하여도 가게에 들어가기 전까지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감자튀김, 아이스크림, 추로스 등을 사 먹으며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마스크까지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 하기에, 거기다 바글바글한 길거리의 사람들 속에서 1.5m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이기에 그저 가능한 한 나라도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하지만, 점점 봄이 오고 따뜻해질수록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대신 사람이 북적거리지 않는 길거리를 산책 겸 천천히 걸을 때가 있는데, 걷다 보면 종종 길바닥에 반짝이는 황동판을 발견한다. 이 황동판은 아마 독일 전 지역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 이유는 과거에 그 자리 (그 길에 접해 있는 곳)에 살던, 나치에 의해 희생당한 유대인 혹은 집시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로 세로 10cm 크기의 이 황동판에는 희생자 분들의 이름, 출생연도 등이 새겨져 있는데, 이 황동색의 돌멩이 같은 기념물의 의미를 알고 난 후부터는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잠시라도 걸음을 멈추고 이름이라도 읽어 본다던지, 아니면 잠시라도 눈길을 주어 가벼운 목례를 하게 된다. 왠지 모르게 그 조그마한 판 안에 그분들의 행복했던 시간과 고난했던 시간 등, 그 모든 나날들이 다 담겨 있는 것 같아서다.

처음부터 전쟁이라는 것이, 인종차별이라는 것, 혹은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이 세상에 없다면 그것만큼 이상적인 것은 없겠지만, 불행하게도 전쟁으로 인하여, 인종차별로 인하여, 그 외 강압과 폭력으로 인하여 희생되어 버린 그 모든 사람들을 이 황동판처럼 이름과 생년월일을 알아내어 생전에 살았던 곳 근처에라도 이렇게 표시할 수 있는 나라가, 역사가 몇이나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항상 일본과 비교를 하는 글들이 참 많다. 과연 일본의 침략과 그 많은 만행들로 인하여 희생되신 분들의 이름을 이렇게 새길 수 있을까.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들로 인하여 희생되신 분들의 이름을 이렇게 새길 수 있을까.


물론 며칠 전에 미국에서 일어난 아시아계 혐오로 인한 총격 사건과 같이 이 황동판이 곳곳에 새겨진 독일에서도 아직까지 인종차별과 다양한 형태의 강한 자에 의한 폭력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늦게라도 잘 못을 깨닫고 뉘우치고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하여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런 곳곳에 새겨진 황동판이 희생자분들을 추모함과 동시에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조금은 제시해주는 것 같다.


더 이상 이 황동판에 들어 간 희생자 분들과 같이 희생되는 삶이, 그들의 이름이 늘어나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핫도그 찾아 삼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