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긴 시간의 감정으로 인한 체기인지, 잘못된 음식물 섭취로 인한 체기인지 몸에 있는 수십리터에 해당하는 물을 내 보내고 꼬박 전에 없던 이틀간의 휴식을 취하고 학교로 돌아갔다.
전날 가득했던 머릿속 질소 탄소도 말끔해졌는지 머리가 찬물로 헹군듯 상쾌했다. 온 사지도 힘이 넘쳐 걸음걸이에도 힘이 넘쳤다.
금요일 오후, 실험실 앞에 도착했다.
나는 기억한다. 내가 4년전 실험실에서 처음 얼마나 벌벌 떨었는지. 그렇지만 한단계 한단계 밟아가며 내가 잘하고 있다는 검증을 TA와 나 자신 그리고 학점으로 받으며 지금은 실험실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보통때처럼 5분일찍 실험실에 도착했는데, 저 멀리서 우리 조 남자애가 걸어왔다. 지난 주에 실수한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이 우리그룹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었기때문에 어떻게 나오나 보기전 먼저 밝은 얼굴로 인사하려했는데, 어딘가에서 잔뜩 열이 받았는지 아니면 내 얼굴을 보고 갑자기 지난기억이 떠오른건지 아님 원래 좀 그런건지 겉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는 표정과 발음과 시선으로 마구 욕을 퍼부었다. 이게 문화차이인게 여기 사람들은 화가 나면 한국사람처럼 참아주고 기다리기보다는 마구 화를 낸다. 이게 막상 당해보면 보통 황당한게 아니다. 순간 위축될까 했는데
아니다 이럴수록 더욱 당당해야지, 이제 내 시야에서 내 마음에서 그 사람을 걷어내자
마음먹고 당당히 실험실로 들어가 그 사람을 제외한 주변인 그리고 나와 친한 TA와 농담을 하며 긴장을 풀었다. 나를 의식했는지 아니면 별 뜻없이 혼자 궁시렁거렸던건지 아까 복도에서 만난 조원이 나에게 먼저와 친절의 제스처를 취했다. 눈치 빠르네, 그래 아직 불안정한 20대 애니까. 그냥 넘어가주자.
파트너 에이든이 왔고, 인사를 한 후 *요즘 mz애들은 인사를 안 합니다. 인사안하고 바로들어감, hi 하면, 어르신이 왜 인사지 하며 hello 합니다. 지난주에 배양해 놓은 세균을 관찰할 시간이다. 드디어 내가 지난시간에 실수한것이 드러나는 시간인거다! 이럴때를 대비해 나는 내 조원 뿐만 아니라 내 주변 조 사람들과도 인간관계를 잘 만들어놓는데, 서로 아이스브레이킹정도는 확실하게해 결과를 비교하고 서로의 학습에 도움이 될 Resource를 서로에게 공급해줌을 아끼지 않는다. 물론 리포트를 쓸 때에는 내 결과만을 갖고 쓰지만 말이다. 인큐베이터에서 우리의 플래잇을 꺼내왔다. 아니 이게 왠걸, 내 것은 예측대로 나왔는데 내 파트너 플래잇은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나는 이 또한 과정과 결과를 분석 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며 격려했지만, 예상대로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슬퍼하는 모습이다.
여기서 잠깐, 캐내디언이라고 해서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참 된 마음가짐을 갖고 공부라는걸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결과에 목숨걸고 점수 안들어가면 안하려하고 그러는거, 한국애들이랑 똑같다.
저렇게 파트너가 지쳐있다는 건, 오늘 내가 저사람 대신 총대를 매고 주도해야함을 뜻한다.팀웍이므로 옆의 팀원을 절대 풀죽게 해서는 안된다. 어쨋든, 어디서인지 용기가 나 실험전과정을 스스로 감당해내며 진행중 파트너와 옆사람들의 중요한 스탭을 체크까지 해주며 앞으로 나갔다. 결과는 성공!
졸지에 하키선수 파트너 에이든과 옆친구들에게서 You are so so brave! 너 참 용감하다 라는 칭찬을 얻게 된다.
굳 캐치라며 감사해하는 모습도 보인다.
나를 극복하고 나니 주변을 극복하는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전까지 남자애들의 힘이 어떻고, 스피드가 어떻고, 남3 여1 그것도 외국인에 나이도 많고 그런조건들 안에서 나를 파악하며 힘들어했는데,텃세, 누진세, 문화차이 모두 현대 캐나다에서 펼쳐지는 기정사실이긴 하지만, 그보다 내 안의 힘듦을 정리하니 내가 하루하루 처리하며 살아야하는 현실 상황에 대응하는 유연성이나 용기, 센스에 드는 에너지가 훨씬 적게 들어감에 놀랐다.
어떠한 글이 주관적이지 않을 수 있겠냐만 오늘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이 컨디션이 좋아야한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나에게 유독 못되게 구는 사람들이 있다. TA 중 하나는 유독 내가 눈에 꽂혔는지 그냥 실험하고 있어도 나한테 와 빽 소리지르고가는 애가 하나 있는데, 어제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장갑을 내가 버렸다는 판단하에 다시 바이오 하자드통에 옮겨담으라는 거였다. 보지도 않았으면서. 평소같으면 그렇게 누명을 쓰면 가슴이 탁 막혀 NO을 얼굴빨개지며 소극적으로 대응했을텐데 이제는 우아하고 단호하게 내가 한 것 아니라고 분명하게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고 주말잘보내라며 나를 싫어하는 사람한테 축복의 인사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심리적문제라는 게 그동안 개인고유의 성격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부분까지 좌지우지했을정도로 무겁게 내가 하는 선택들은 물론 나의 사고와 행동과 기분과 느낌을 모두 짓누르고 있는거였다. 다 좋은데 자신에게서 어딘지모르게 좀 답답함이 있고, 그것을 처리하면 인생의 효율이 높아지리 확신하는 분이 계시다면, 또는 남들은 모르는 자신만의 문제를 평소 부정한채 그냥그냥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아해체과정에의 도전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