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1990년대 초반, 장소는 서울,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잔인하게도, 내 엄마는 사랑이 너무 많은 사람이었다. 오후 5시 반, 엄마가 직장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실시간이면 나는 단독주택 대문을 나서, 골목 어귀에 서 있었다. 엄마가 우리들을 발견하시는 순간, 팔을 양쪽으로 활짝 펴시며, 커다란 해바라기 같은 웃음으로 우리들을 품안에 꼬옥 안아주실테니까...
엄마의 작업복에 실밥이 얼마나 엉겨있든, 먼지덩어리가 얼마나 붙어있든 나에게 그딴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엄마의 환한 웃음안에 가득 안기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 엄마가 나와 동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하루 중 가장 성대한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엄마를 맞이하는 이벤트를 하기 전까지, 나는 학교가 끝나고부터 집에가서 무엇을 할지 생각하곤 했다. '숙제를 해 놓을까?' 방바닥에 엎드려 누워 엄마가 오시기전까지 숙제를 해 놓기도 하고, 표준전과와 동아전과의 내용을 요약해서 나만의 노트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아! 학교 선생님께 칭찬받았던 이야기도 좋다'
늘 엄마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 두어야 마음이 편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엄마가 안아주실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의 해바라기 같은 웃음에 무언가 내 마음을 담아 무언가의 형태로 플러스 알파를 보태어 엄마를 더더더 기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엄마가 기쁨의 함성을 지르며, 나를 바라보는 그 짜릿함이 나에게는 배가 되어 내가 엄청나게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키워짐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매일아침 출근길에 주시는 하루 용돈 500원, 1000원도 엄마를 위해 썼다. 동네 문방구에가 엄마가 제일 좋아할 수첩도 샀고, 볼펜도 샀다. '문방구 아저씨, 그거 알아요? 이거 우리엄마 드릴 선물이에요.' 매일이 그렇게 벅찼던, 초등학교 저학년에 캔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