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통찰, 분노, 회복의 몸짓
치료는 성공적이었다.
입원과 통원을 반복한 2년간의 집중 치료와 10년에 걸친 재발방지와 장기추적. 그 여정 속에서 훌륭한 의료진과 약물들, 방사선치료, 부모님의 희생, 동생의 적극적 수동성, 그리고 나의 방패였던 침묵과 함께 동생은 완치 판정을 받았다.
원하지도 않았던 병에 우연히 걸려 넘어진 동생이 드디어 살아남았다. 첫 입원날, 1996년 9월 29일에 만 7세였던 동생은 기력을 회복해 세상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고, 스무살이 되어 학업능력에 맞춰 대학에 입학했다. 성인이 된 그녀는 친구들을 사귀고, 함께 여행도 다니고, 취미생활도 하며 살았다. 졸업 후, 20대 중반부터는 안정된 직장을 잡아 30대 중반인 지금도 한 직장에서 경력이 쌓인 채 꾸준히 일을 하고 있으며, 돈도 차곡차곡 모으고 학생들과 부모님께 받은 사랑과 존경을 마음에 쌓으며 스스로의 영과 육을 성숙시키고 있다. 번아웃도 느끼고 해외여행도 하는 프로 직장인들과 남 다를바 없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위기를 극복해 낸 후에 용기를 얻은, 아픈 뒤에 성숙해져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주위에 귀감이 되는 성인이 되었다.
엄마...엄마는 지금도 동생이 아팠던 기간이 오히려 자신에게 가장 큰 행복의 기간이었다고 말한다. 동생과 늘 함께일 수 있어서, 중병에 걸린 딸을 간호하며 완치를 이뤄내어 효능감을 발견했으며 주변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 그리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이러니하게도 인생 가장 행복했던 기간이었다고 하신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필요한 사람인 적 없던 그녀, 병원에서야말로 누군가에게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되었고, 그건 생애 처음 '나 없이 안 되는 자리'를 얻은 경험이었다. 아픈 아이를 두지 않았으면, 평생을 투명인간처럼 살았을지도 모른다며, 오히려 동생의 완치 판정후에 방황하는 삶을 지속하는 모습이다.
1950-60년대에 태어난 많은 딸들이 그러했듯, 사춘기 이후부터 밖에서 일하고 세상에 치이느라 고생했는데, 원래 돈은 스스로 벌어 살아야하는 줄 알았는데, 입원해 있어야했던 둘째딸의 시간 덕분에 누군가가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이 가능함을 알게 되었으며, 동생 병간호라는 이름뒤에 성격이 잘 맞지 않은 남편과 주중과 주말을 각자 분리된 공간에서 살 수 있었고, 병원을 탈출한 주말에는 기혼자임에도 남편과 무관하게 친구들과 놀러도 가고, 먹고 싶은 것 다 사먹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20대에도 못 얻었던 뜻밖에 휴식을 얻었다고도 하신다.
남녀차별시대에 이전에는 구박대기로만 자신을 대했던 친정오빠들이 이제는 자신을 동정과 연민 그리고 사랑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며 기세를 역전한 것 같은 행복감에 눈을 반짝이는 엄마이다.
열심히 착하게 사는 것 만이 인생의 정답이라 생각했는데, 나름대로의 고정관념이 깨지며, 세상을 거꾸로도 볼 수 있는, 의식전환의 기회를 준 둘째딸은 자신의 분신이자 수호신이라고까지 하신다.
큰 딸인 캔디의 입장을 생각하면 딱하디 딱하나 '그 또한 지 팔자소관이며 엄마를 없는 셈 치고 살아도 된다고... 그래도 할 말 없다' 는 말을 너무 어려 그 말뜻을 헤아릴 수 없던 시기인 초등 5-6학년때부터 스물이 넘은 결혼 후까지 계속 말씀하신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이 모든 엄마의 말이 아팠던 동생을 배려하기 위함 혹은 내게 면목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진심에서 우러나는 철없는 소리임을 안다. 병동 안에서 같은 병을 공유하는 환우가족들과 언니 동생하며 지내며 여행도 갔다 왔었고, 완치 후 근 20년이 지난 현재시점까지 연락하며 지내는 사이가 있을 정도로 그 안에서 유대감과 위로, 사랑과 감동을 나누며 전에 없던 사람들 안에서의 감정의 충만함을 경험하신 엄마이다.
물론 새벽에도 잠들지 못하는 백혈병걸린 어린 딸의 고통을 보며, 숨죽여 우는 날도 많았고, 잘 먹지 않는 날에는 본인이 직접 음식물을 입으로 씹어뱃속에 넣어 주고 싶을 만큼 애가 타는 날도 있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생일도, 감기몸살도 숨겨가며 지나간 나의 사춘기. 내 수험생활은 엄마의 머릿속에 없었지 않았나, 수능 당일 새벽 4시, 엄마는 춤추다 들어왔고, 그 사건은 내게 확신을 주었다. 엄마는 동생이 피토하며 병원으로 실려간 바로 그 날부터 단 한번도 내 눈을 본 적이 없다는 걸.
원래 두명의 아이에게 가야했을 육아 에너지가 아픈 한명의 딸에게 몰입 되었다 보면 아이 둘 있는 평범한 집의 다른 엄마들보다 그리 고생스러운 입지였다고 볼 수 없으니 결과적으로 이 여성을 그 누구도 각별히 동정해드릴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다.
아빠는 경제적 의무감이라는 감정을 혼자 짊어지고 위기를 헤쳐나간 분이다. 때를 잘 만난건지 못 만난건지, 위기와 기회가 한꺼번에 들어온다는 말이 맞는지, 아이가 아픈김에 돈이 신나게 들어왔다. 물론 아빠가 뼈골 빠지게 노력하고,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고 이룬 일임에 분명하다. 이 때를 생각하면 아빤 내게 영웅임에 틀림없다. 동생 치료비를 감당 한 직후에도 우리집에 빚이 남지 않았으며, 오히려 건강해진 딸과 재산이 더욱 생겼음은 아빠의 인생에 타격감보다는 성취감과 효능감을 남긴 지난 20년의 기간이었다고 보여진다. 3040에는 누구나 경제력을 키우느라 고생하며, 후에 성숙을 이루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목표인데, 동생도 완치된 마당에 이제는 여유있는 삶을 영위하니 이 남성도 위기를 격파하고 크고 작은 성취를 경험하며 나름 의미있는 시간을 사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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