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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에 갇혀 멍하게 지내던 내가 자발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 시작한 건, 부모님이 깔아준 서울 땅, 남편이 나를 위해 마련해준 서울 집에서 벗어난 후 부터였다. 캐나다 이민, 물밀리듯 밀려들어온 이민이지만, 나를 몰아넣는 이 물살에 떠밀리는 것이 대체 언제까지일까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고, 절박해졌을 때,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고, 생각을 글로 담기 시작했다. 늘 내가 익숙하게 살던 환경에서였더라면 획득할 수 없었을, 그동안의 나 자신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겼고, 과거를 조망하며 현재의 나의 생성원인을 누구보다도 정확히 인지할 수 있었다. 인생의 방점, 아, 내가 이 곳에 있구나, 그리고 앞으로 내 삶을 더욱 나 답게 꾸려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할 수 있는 보다 능동적인 시각과 행위를 얻게 되었다. 그동안의 나, 지금의 나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방에 살던 사람이 서울에 오고, 서울에 살던 사람이 해외로 나가거나, 해외에 살던 사람이 지방으로 거처를 옮기는 것이다. 그러면, 검은 바탕에 검은 색으로 살던 나, 흰 바탕에 흰색으로 살아 미처 인식할 수 없었던 내가 배경색이 바뀌며 이제는 비로소 검고 흰 자아가 비춰보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들을 키우며 생각한다. 평소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쓰는 한편, 부모의 간접적, 직접적 지배하에 이루어지는 교육행위가 아이의 자기인식능력을 키우는 것에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하지 않는다. 결국, 짜릿한 사교육이나 준수한 공교육 혹은 젖소나 수재원이 아니라 특정 연령 이후에는 내 곁을 떠나게 하는 것 만이 아이를 아이답게, 행복에 가깝게, 부모를 극복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 말이다. 서울대를 가고, 의사가 되고, 판검사가 되고, 장관이 되어도 결국 내 안에 있다면, 내 아이는 내가 일군 터전, 그 이상의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행복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다다르게 하는 길은, 위에 나열한 여타 조건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자기 인식과 조절능력에 있다는 내가 내린 정의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세기 12:1
파도에 밀려온 듯, 아무런 준비 없이 그저 여권 한장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갖고 들어온 캐나다 이민이어서 다행이다. 내 아이들 육아를 도와줄 외갓집이 지척이 아니라 다행이다. 옆집에 친척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하루 시간대가 정 반대라 통화가 불편해서 너무나 다행이다. 주재원 신분 등 의지수단 하나없이 온 맨땅의 헤딩이라 너무나 다행이다. 없애버리고 싶던 사랑스러운 저질영어가 역설적으로 나를 깨웠다. 나를 살렸다.
어제의 나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자각하고, 부모를 비롯한 환경을 정복하고 싶고, 더 멋지게 살고 싶다면 40에도 늦지 않으니 최대한 빨리 무조건 해외로 나와라, 그리고 고통의 중심에서 글을 쓰자.
내 큰 아이는 독립훈련을 위해 약 16일간 나와 떨어진 곳에서 합숙생활을 마치고, 한뼘 더 성장한 모습으로 지난 주말 당당히 공항에 들어왔다. 이 이야기는 멤버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