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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겐남 아들의 지난 친구관계고민

시그마와 로드(Lord)그리고 스키비디 토일렛

by 후루츠캔디

작은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게 된 지, 일주일이 흘렀다. 바인더 안에 담아오는 것 하며, 선생님의 피드백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 아이는 또 항상 그랬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시는 선생님 반에 배정이 되었고, 첫 날 그리고 둘째날의 긴장감이 어디로 갔는지 매일매일 아침이 행복한 모습이다.


나름대로 반 아이들의 특성을 다 파악했는지, 누구는 자신이 2학년때 그리고 3학년때 같은 반이었는데 이번에 또 한반이 되었다든지, 우리 가족구성원과 다르게 유난히 작은 키에 고민이 많은 중에, 자신이 반 남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작을 줄 알았는데, 이 전에 자신보다 키가 한뼘이나 컸던 아이가 이번에 보니 2cm 이상 작아졌다고 말하며, 여름방학동안 나름대로 부단히도 노력한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다 (참고로 너보다 작은 아이는 남들이 모르는 비범함이 반드시 있을것이며, 익스트림 스마트하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줄넘기 하루 300개 뛰기, 수영과 농구 등 어떤날은 하기 싫어 울면서 엄마등살에 억지로 하면서도 '과연 내 키가 커지고 있는 것 맞나' 하루에도 두 세번씩 키 체크를 할 정도로 조바심을 냈는데,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노력의 성과가 있었다니, 나와의 관계도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작년과 다른 좋은 담임선생님, 반가운 새학년 친구들 그리고 커진 키 이외에도 아이를 등교전 아침마다 행복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Jone 의 친구 탈퇴이다.


Jone은 아이의 지난 2년간 친구이다. 학교에서도 2년간 같은 반, 나름 컴퓨터게임도 같이 하고, 나름대로 엇비슷한 신체와 지적발달단계가 비슷해 누구라도 내아이와 그를 한눈에 친구라고 생각할 만한 아이이다. 워낙 내색을 안하고, 학교 생활에서도 늘 칭찬만 받는 둘째 아들이었기에 나는 잘 지내겠거니 믿었건만, 나름대로 둘의 관계에서 힘든점이 있었나보다.


아동의 발달은 사실, 신체와 지적능력 이외에도 언어, 정서 그리고 사회성발달 측면도 눈여겨볼만큼 중요하다. 엄마가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이고, 아빠는 의사인 Jone은 부모처럼 셈이 아주 빨랐다. 항상 우리 둘째 아이가 반 아이들 중 가장 수학뿐만 아니라 모든 과목에서 앞서는 데, 지난 2년간은 둘이 엎치락 뒤치락 1등 자리를 주고 받고 했다니 이미 한 5살 무렵부터는 왠만한 성인과 깊은 대화가 가능하고, 이런 아이일 수록 또래 관계에서 외로울 거라 내심 걱정하던 내 맘에 Jone 같은 친구가 있으니 내게도 Jone은 한 줄기 빛이었다. 이제 드디어 우리 둘째도 함께 마음을 나누고, 지적 능력을 겨룰 동지가 생겨, 외롭지 않겠구나, 학교 생활이 따분하지 않겠구나...


그러나 이 아이는 우리 아이가 갖지 않은 특성 한 개를 더 갖고 있었다. 관계의 주도권을 어떻게하면 쟁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이 지능적으로 의도한것인지, 혹은 어른 인격착취자들처럼 단지 오직 자신의 관점만을 고려하고 타인의 관점을 고려하기에는 부족한 지능을 가져서인지는 아직 확인해보지 않아 단정하기 어렵다. 우리 가족 중 누구도 우리의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고, 가르쳐 줄 수도 없는 그런 영역의 것을 알고 있는 Jone 앞에서, 친구라 부르지만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아이들이 많은 Jone은 내 둘째를 조금 당혹스럽게도 했다가, 또 본인의 필요에 따라 친절하게도 했다가 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속이 깊은 내 둘째 아이의 마음을 완벽하게 장악해버렸다. 내 아이는 그 아이와 있을 때 자신의 중심축이 흔들릴만큼 에너지가 뺏기고 고단할 때가 있지만,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주고, 말이 통하는 친구이니 그 아이를 놓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사회적 관계망을 읽는 데 빠른 아이는 한편, 정서적으로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이 아이가 그런 아이였던 것 같다.


우연히 보게된 아이의 디스코드 계정에서 둘의 대화를 보았는데, Jone은 스스로를 Lord라고 부르며, 아이들의 등급을 정해 그야말로 온라인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아이들은 불편하지만 함께 하고 있었다.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 아이만큼 자신을 꽉 잡고 재미있게 해줬다가 힘들게 했다가 정신을 못차릴만큼 내 자아를 쥐고 흔드는 아이도 없으니 아이들은 그 밑에 종속되어있는 상황에서 벗어나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Jone이 잘하던 것은, 내 둘째 아이와 자신의 다른 친구들 사이에 벽을 놓는 짓이었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말하려하거나, 존의 통제 하에 있는 다른 아이들이 내 아이와 대화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고 한다. 모두 한 반인 아이들을 그렇게 한 명 한 명 고립시키면 그 서클에 속한 소위 비슷한 아이들은 모두 Jone 만을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아이들을 각자 고립시키며, 모두의 힘을 모아 자신의 통치에 사용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캐나다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에서만 친구관계때문에 갈등일 것 같나? 캐나다도 사람사는 곳이므로 같다.


부모를 헷갈리게 하는 건, 초등 5-6학년 시기인 만큼, 사춘기 무렵과 겹쳐 호르몬에 의해 아이가 유난히도 예전과 다르게 예민해졌다 착각할 수 있다는 점. 그것이 또래갈등의 어려움앞에 우리를 속수무책으로 만들었다. 알고보니, 호르몬이 아니었던 지, 학년이 바뀌고 서로의 학교가 바뀌니 아이는 지난 3학년때와 같은 맑고, 애교많고, 자질구레한 일상 이야기를 잘 하는 내 둘째 아이로 되돌아왔다.


내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는 9월 학기 초가 되기 1주일전, 반배정표를 교문앞에 1주일동안 게시하는 전통이 있는데, 지난 여름 나와 함께 반배정 체크를 갔다가도 내 아이는 자신의 이름보다 Jone의 이름을 먼저 찾아내었다. Jone 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당혹스러워하며 언제라도 울음을 펑펑 터뜨렸다. 이상하다 여겨 조사한 ㄲㅡㅌ에 여학교만 다녀 여자들 안의 관계에만 민감한 나는 사실 무슨 일인가 좀 더 알아보자 했지만, 남자관계에 이미 익숙한 남편은 그들의 대화목록과 평소 생활 패턴, 아들의 기죽은 모습을 보고 단박에 문제를 짚어 낼 수 있었다.


믿지 않고 싶었지만, 현실이었다.



집 주소에 적합한 공립학교에 자동 진급하지 않을 경우, 행정상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부모 자신이 먼저 자진해 오피스에 다른 학교에 간다고 고지하는 것이 캐나다의 원칙인데, 근처 사립학교에 입학할지 고민이라고(이미 그곳으로 갈 것을 정하고 원서를 낸지 오래이며, 입학 합격 통지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거 나는 이미 옆의 옆집에서 다 들었어 모친아), 그러면서도 기존 학교 아이들을 Jone의 생일 파티에 초대한거라고 피자 두 판 주던 그 엄마는 역시 학교에 자신의 입학 정보를 업데이트 하지도 않았는지, 반배정표에 Jone의 이름은 덩그러니 내 아이 옆반에 표기되어있었다.


본인들이 학교를 옮길거면, 아이들에게 희망고문이나 하지말지, 가는 마당에 생일 초대는 왜 하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오랜 관계에서라면 자신의 계획을 미리 이야기해야하는건 아닐까. 간다고 미리 말한다면 안 놀아줄 것도 아닌데.. 꼭 자기 같은 생각만하나. 학교와 같은 공적 시설에 대한 보고 뿐 아니라 개인적 관계에서도 자신이 짊어져야할 심리적 데미지와 부담을 최대한 부정하려 보고를 최대한 뒤로 늦추고, 서로를 믿고 있는 마음 뿐인 타인의 순진한 아이들에게 자신이 감당해야 할 심리적 부담과 헤어짐의 무게를 덤테기 씌우는 태도가 본인 아이들을 비롯한 주변 아이들에게 상호신뢰, 상대에 대한 건강한 믿음과 적절한 의존이라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을 가르치는데 치명타라는 것을 이 '수학선생님 모친 의사 부친'은 왜 고려하지 못할까. 서로 축하해주고 마음 정리할 기회를 주면 서로에게 미래에도 좋을텐데 말이다.



사실 난 지금으로부터 약 10년전에 이 엄마를 만났던 적이 있다. 둘 다 초기 이민자였던 우리는 여성 이민자 커뮤니티안에서 친목을 다졌는데, 대화주제 중 하나였던 '아이의 생일 잔치' 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 엄마의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않는다. 아이들을 초대하고 어떤 음식을 줘야할지, 무엇을 대접하면 행복할지, 모르겠다는 나의 말에,


캔디야, 생일 잔치는 완전 이익이야,
피자 두 판만 챙겨주면 한명당 최소 30불씩 선물챙겨오거든


이라고 했던 Jone의 모친. 그 때엔 아이들 모두 다른 학교에 다니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으로 '헉' 한 마음 놓고 연락을 안하고 지낸지 10년, 아이이름만 보고 생일잔치 초대에 응했기에 이 엄마인 줄 알 턱이 있었나. 가보니 그집이었다는...


지금까지 수많은 생일에 초대되었는데, 모두 커뮤니티 센터에 놀이기구를 넣어주고, 부폐를 챙겨주거나, 실내 놀이터를 통째로 빌리거나, 골프클럽에 데려갔지, 자신들의 사회 경제적 자부심을 드러내면서도 피자 두 판 주는 집은 당신네 밖에 없었어. 그러면서도 뻔뻔하게, 너네 아들은 핏자 한 쪽이 아닌 두 쪽이나 먹었다고 인증해주는 그 모친. 경제적 형편이 모두 다르기에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사항은 아닐거라는 건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 조의 모친은 10년전 이민자 단체에서 내게 자랑스럽고 번뻔하게 말하던 피자드립을 기억할리 없었지만, 그 모친의 얼굴과 피자 상자 두 판은 트리거가 되어 10년전 내게 기세 등등한 표정을 짓고 했던 그녀의 말이, 내 의식의 수면위에 떠올랐으니, 둥둥둥. 내가 치사해서 아무 말 안하려다가 애가 흘리는 눈물을보니 참 나까지 서럽다. 생일 파티에 초대된 아이들을 아들의 소중한 친구들이라 생각한다면 도무지 연출할 수 없는 그녀의 얼굴표정을 10년전에 분명 읽었는데, 엄마 이름보다 아이 이름을 보고 초대에 응했던 함정이 있었을거란 걸, 그리고 그녀또한 조의 친구 00가 캔디의 아들일거라고는 예측할 수도 없었다는, 그래서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는 이야기다.

자신밖에 모르고 모든게 자신 위주인 아이의 행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대목이 여실히 드러났다.


하나 마음에 걸리는 점은, 그 집 큰 딸의 얼굴 표정이었다. 누나가 하나 있는 Jone. Jone과 큰 딸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다른 그 엄마를 확인한 건, 그 가족과의 헤어짐을 결정하는데 가장 큰 단서였다.


새학년, 새 반에 편입되어 행복하게 학교에 잘 다니고 있는, 과거의 경험을 다 잊을 줄로 알고 있는 둘째 아들에게, 앞으로의 비슷한 사고를 막고자, jone과의 지난 일에 대해 나의 둘째 아들과 단둘이 다시 한번 대화할 기회를 만들고 싶지만, 지난일이라 믿고 잘 지내는 아이의 마음에 긁어부스럼을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어, 대화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아이가 좀더 자신감을 획득하고 난 이후에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좋을지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물론 아이에게 '피자 두 판'과 관련된 조의 엄마 드립은 아이를 지키기위해 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아이에게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지만, 때로는 진실을 정도껏 공개하는것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걸 아니까.


너는 왜 쓸데없이 속이 깊고 또 깊어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거니.
존이랑 평소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거니...네 입으로 말해줄 수 있겠니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이미 벌어진 문제를 없는 일로 만들 수있다 생각 하니.


새 학교에 진학하며 지나치게 걱정하는것이 이상하긴 했다. 감정을 털어놓고, 인정하고, 충분히 느끼며 흘려보내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 잊은줄 알았던 그때의 감정과 생각이 네 마음속에서 제멋대로 왜곡되어 너의 앞으로의 인간관계에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엄마는 오늘도 너의 깊고 여린 마음이 좀 걱정이 된다.



P.S. 참고로 Jone은 한국인이 아니다.

가줘서 고마워으, 존 그리고 그의 모친. 빠이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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