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람 내가 찾기, 하이브리드 정체성에 날개 달기, 교차점에서 빛나는
나는 경계인이다.
나는 이십대 초반에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남편은 30대 초반에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둘이 별 다를 것이 있나 싶겠지만 개인차를 고려하고나서도 30대 이민자와 20대 이민자는 출발에서부터 크고 작은 부분에서 차이가 나며, 이민생활 15년이상이 지난 후에는 그 차이가 현격해진다. 물론 나와 같이 20대에 이민을 시작한 사람과 10대 초반에 이민을 시작한 사람도 차이가 날 것이며, 이 곳에 초등학교 이전에 이민오거나 태어난 사람사이에도 차이가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 부모님은 물론 조부모님의 캐나다 거주기간, 적응 정도에 따라서도 상당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을것이라 생각이 든다.
두 나라간의 선택지 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스스로의 사회적 성별을 선택한 사람도 있고, 나와 다른 민족성을 가진 배우자를 만나 결혼해 하이브리드 아기를 낳는 사람도 많다. 한번에 한 부모와만 성장해야만 하는 사람도 있고, 부모가 아이를 키워야한다는 통념과 달리 다른 사람의 손에 성장한 사람도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경계인이다. 통념상 즉, 메인 스트림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곳에도 저 곳에도 속할 수 없어 소속감을 느낀다거나 어딜가도 다수 그룹에 속해 속 편한 상태라고 볼 수 없지만. 반면 사람들이 다면화되는동시에 일원화 되고 있는 이 때에 그런 경계를 인식할 필요성 조차 흐려지고있으며 사고방식을 바꾸면 모두가 이 곳이나 저 곳에 속하지 않는 경계인 상태라야만이 생존에 유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어느 그룹에서도 메이저 스트림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죽는 건, 너무 단일민족적 사고를 중시한 유럽이나 한국에서의 사고방식에만 세뇌되어 있어 벌어지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혹은, 한 시대가 무의식적으로 쳐받드는 일원화된 규칙을 생각없이 신봉한 나머지 따르는 데서 오는 사고의 흐름과 행동양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외롭다. 소속감을 느낄 수 없다. 어딜가도 소수에 속한다라고 말한다.
나도 다를바 없었지만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은, 소속감이란 것이 꼭 생득적 혹은 피동적으로만 취득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수동적인 개념으로서의 소속감만을 생각해 왔다면, 이제부터는 능동적 개념으로서의 소속감을 생각하기로 했다. 한 학급, 한 학교, 한 나라, 한 민족, 한 언어, 나이 등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게 주어진 그룹 안에서 주어진, 일종의 세뇌된 가짜 소속감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나의 신념, 나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 내가 좋아 선택한 직업, 근무지 등을 바탕으로 능동적인 소속감의 개념을 내 스스로에게 심기로 했다. 꼭 태어난 것만이 원초적으로 주어진 것만을 소속감의 카테고리에 넣을 필요는 없지않은가. 다소 유동적일 수 있고, 기간이 짧을 수 있지만 또 그 만큼 모든 사람을 경계없이 포괄할 수 있다는 장점도있는 능동적 개념의 소속감.
그러기위해서는 의기소침해 있으면 안된다. 마치 새 학급에 배정되어 아무런 탐색도 하지 않은 채, 누군가가 나를 선택해 주겠지 하며 오매불망 친구를 기다리는 수동적 자세를 벗어나, 자신감을 갖고, 주변을 샅샅이 훑어보며 너나할것없이 내가 먼저 내 곁에 가까이 두고 싶은 매력적인 친구를 찾아나서야 한다.
나의 생각은 나를 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