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m 1이 끝나고 고등학교에서 첫 성적표를 받은 날
아이의 성적은 부모의 성적이라는 말을 믿지는 않는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내 아이의 성적은 나와 무관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왔으며, 아무리 좋은 성적을 받고, 사회에서 굳건히 자리하고 있어도 내 아이의 성적은 그와 별개일 수 있고, 별개일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의 점수에 내 행복과 불행이 왔다갔다한다거나, 남편과의 화, 불화가 결정되는 가정환경에서 아이를 양육하고 있지는 않다. 스스로의 두뇌가 적극적으로 임해야하는 학업에 기폭제를 첨가하기 위한 돈을 쓰고 있지도 않고, 다만 아이가 방향을 잘 잡고 스스로 기세를 몰며,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아이를 뒤에서 톡톡 쳐줄 뿐이기에 아이가 점수가 잘 나오면 모두 다 아이 스스로의 노력이며, 적성이며, 재능이라 생각하는데에 별 변수가 없다.
특정인종이 많아졌다 요즘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는 동네, 아시안이 많은 동네, 난민아파트가 있는 동네인 동시에 중산층이 거주하는 동네라 동시에 부를 수 있는 동네에 살고 있으며, 나 또한 난민이나 갓 정착한 이민자와 별 다를것 없는(젊고, 유능하고, 앞으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사람들) 이민1세대 십수년차 시민권자이다. 이미 이민 2,3대가 정착한 동네가 우리에게 더 좋다는 보장이 없음을 알고 있다. 물론 그 곳의 사람들의 삶이 좀 더 안정적일 수는 있겠지만, 여간 제 나라에서 똑똑하지 않고서는 이민이라는 행위를 추진할 수 없기에, 사실상 이민자가 많은 동네가 교육열의 측면이나, 학업분위기 측면에서 그리고 아이들의 근면성이나 비행 측면에서 함ㄲㅔ 사는데에 더 열등하다고 섣불리 결론 지을 수도 없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탈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자조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았으면 한다. 굳이 초기 정착민들이 많은 곳에 끼어들어가 콩꼬물이라도 떨어지려나 이익볼 도둑놈 심보도 없고, 제 아무리 모두가 스스로 잘 난 줄 알고 살더라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안전이 보장되는 면이 있기에 비슷한 사람들 속에서 파묻혀 무난하게 사는 방식이 내 삶의 방식이다. 행복은 상대성에서 나온다. 한 두번 놀러가는것이야 게의치 않지만, 내가 뭘 줄게 있어야 남도 나에게 준다는 생각이 있기에 내가 이 사회에 뭘 줄게 생길 때 까지는 아시안, 이민자가 많은 지역에 사는 것이 나나 집단생활을 하는 아이의 정신건강에 편하다는 생각은 초기정착 시점을 지난, 한 이민 5-7년차쯤부터 지금까지 쭉 지켜지고 있다.
건강한 자아 위에야 비로소 남을 왜곡없이 볼 수 있는 눈이 길러지기에 민감한 어린시절부터 내가 없고 남이 있는 것을 굳이 대비시키며 가르치기보단, 있는 그대로 스스로의 온전함을 가르치는데에 비슷한 사람안에서 살게 하는것 이상의 조건은 없다. 온전하게 성장한 후에는 제가 알아서 더 나은 조건, 환경을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찾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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