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하기가

by 후루츠캔디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언제부턴가 밥을 두 그릇씩 먹기 시작했다.


엄마, 밥 더 있어요?


뭐든 자식 입에 한껏 들어가는 것이 행복한 나는 아이의 식사를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그래그래, 많이 먹어 많이, 아이구 많이 크겠네.'


그러길 하루, 이틀, 몇 달이상이 지났다. 키가 번쩍 크더니,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되었다.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가만히 있기가 힘든모양이다.



인간으로서 에너지의 최대치가 어느정도인지를 아이를 통해 체험하는 기분이다.사춘기, 돌도 씹어먹을 나이라고 하던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 잘 알겠다. 일단 밥과 고기는 보통사람의 2배를 먹고, 간식은 간식대로 빠뜨릴 수 없고, 학교에서도 열심히 활개를 치고 다닌다던데, 2030을 넘어 중년의 나이로 접어든 나는 에너지가 20대때의 반절로 수축된것이 느껴지는데 확실한 세대교체가 느껴지는 물리적 압력이었다.


와.. 저 에너지.. 초등, 유치원때도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아들 키우기 쉽지 않다 했는데, 이제 그것의 10배정도의 에너지가 올라왔다. 저렇게 넘치는 에너지가 주체되지 않아서 사고날까봐 걱정이다.


아이 입이 짧다고 고민할 것이 없을 것 같다. 때가 되면 정말 폭주하니까. 이 아이 어떤 아이였는가, 어린시절, 입이 짧아 매번 음식을 하면서도 이건 먹어줄까 저건 먹어줄까 고민의 연속이었고, 음식끼리 닿는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혹시 걱정할만한 문제가있는 것은 아닌지 병원이란 병원은 다 따라다녔었다. 입속에서의 촉감과 식감을 얼마나 예민하게 의식하던지, 이건짜다 저건 싱겁다, 그런식의 아이 성향을 나는 무시하지 못하고, 최대한 맞춰주려 노력하는, 그게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라 믿는 과잉긴장의 엄마였다.


그도 그럴것이 사회에서는 '바람직한 엄마'의 역할을 너무나 심하게 강조한다. 장수 육아프로그램 중 하나가 교과서인양 보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대학때 배운 이론대로라면 할 법한 이야기를 보며, 지금은 '저건 이론적으로나 그렇지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라며 현실과 교과서의 갭을 인정하는 느슨한 엄마가 된 나를 보며, 한 차원 시들해지고 팽팽함을 잃는것이 꼭 나쁜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과 같이 대대로 유교사상이 내려오고, 아이엠에프 위기를 겪었으며,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린 곳에서 어떻게 아이에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살길'이라며 아이 교육을 위해 이사를 하고, 잘 먹이고, 학원과 과외를 돌리는 엄마를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시청자로서의 나, 패널이든 게스트든 박사이든 결국 별반 다를 것 없는 모두 같은 사람이면서 누가 누굴 가르치려는지 모르겠다 생각 들 때가 있다.


내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일 뿐이다. 물론, 안다. 아이에게 가혹한 현실이라는거. 하지만 사회차원의 시스템적 접근을 포기하고, 개인을 초대석에 초대해서 사생활을 관찰하고, 전국민의 모욕을 감당하게 하며, 누군가의 가르침에 의존하게 하는패턴은 너무나 근시안적이고, 사회의 문제를 개인에게로 돌리며, 인간의 다양성을 말살하는 폭력적인 행위라는 자각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대부분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걱정하는 문제들은, 아이의 성장과정안에 있을법한 당연한 일인데, 이것을 하나하나 꼬투리 잡아 부모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고, 완벽주의로 흐르게 하며, 자존감을 깎아먹는 행위는 솔직히 자신감을 갖고 왠만해서는 눈뜬 장님하고 살다보면, 사춘기시기를 겪고, 때가 되면 바로 서게된다.


그럼 덮어놓고 살테니, 나중에 잘 못되면 당신이 책임질거냐.. 라는 의문이 여러 사람, 식구들을 먹여살리는 것 같다. 그래서 불안 마케팅은 언제나 승리하며, 인간감정의 소진이란 살아있는 동안 없는 것처럼 그 또한 인간과 함께 공존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이 시각에도 우리 모두는 불안하며, 불안의 정체는 사실 나 자신이 아니라 아무 생각없이 보는 유튜브 연예인의 광고 등 세상이 만들어내고 있을수 있음을 각성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화장품을 선전하는 연예인을 볼 수록 스무살 때와 다른 내 피부에 대한 불안이 생성되며, 조금전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없던 내 화장대위의 화장품을 싹 갈고 싶고, 피부과 의사들의 시술 홍보가 실제 피부와 나를 지탱하던 마음밭을 순식간에 민감하게 한다. 마음이 움직여지니, 실제 광고의 원리가 작동하니, 돈을 버는 사람이 존재한다. 인간이 감정이 있는 한, 언제나 수요는 맘먹고 만들면 반드시 창출된다. 세상의 공격에 대한 회색돌이 되어야함을 알지만, 자칫 그 놈의 자칫이 문제이다.


모든 아이는 다르다. 모든 성인도 다르다. 다 자기 밥그릇은 스스로 하며 결국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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