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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Dec 29. 2022

라벨, 텍

민감한 감각의 소유자로 기억되는 우리 엄마

엄마, 엄마

나는 엄마와 10년째 절교 중이다.

그런 엄마에 대해 오랜만에 떠올려보니, 엄마는 새로산 내 옷의 라벨을 떼어내던 사람이라는 점이다.

오늘 캐나다 박싱데이를 맞이해 아이들의 겨울용 방한복과 신발, 그리고 상하의를 잔뜩 사 왔는데, 라벨에 아이들의 이름을 적던 끝이라 그 생각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우리 엄마는 내 옷을 구입하는데 꽤 인심이 후한 편이었다.

그런 엄마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예쁜 옷을 많이 입어 주변의 환심을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고 귀여운 나를 데리고 인형놀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나에 대한 칭찬을 본인의 것으로 가져가지 않고, 내가 받도록 끝내는 것에서 우리 엄마는 여타 나르시시스트 엄마들과는 다른, 차이점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엄마가 새로 산 내 옷에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은 라벨을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는 행위였다.


나는 이게 세상에서 제일 간지럽더라


그런가? 나는 그다지 그 라벨의 감촉이 싫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왜 그렇게 생각할까,
싫은 것도 좋은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 엄마가 계속하도록 내버려 두었었던 것 같다.


내가 엄마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건, 엄마가 내 둘째 아이의 산후조리를 해 주실 목적으로 이곳 캐나다에 두 달간 방문하셨을 때이다.
10년 전이었는데, 이 기간 동안 느낀 엄마의 모습이 그전에 알던 엄마의 모습과 너무 달랐음을 기억한다.
그게 엄마를 지금까지 단절한 이유가 되기도 했으니까

그 두 달간 엄마는 자신의 몸을 단 한 순간도 가만히 두는 법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티브이를 볼 때나 심지어는 밥을 먹을 때에도, 가만히 혼자 앉아있을 때에도,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끊임없이 만져대며 긁고, 비비고, 손에 걸리는 것은 무조건 뜯어내고 마는 성향이 있었다. 뭘 그렇게 만지작거리나 보면,  엄마 주머니 속에는 내 이어폰에 끼는 동그란 고무가 들어있기도 했었다.

애정결핍의 산물 같아서 엄마가 징그럽고 짜증 났던 기억이 난다. 왜 그렇게 만져대?

 

지금의 내가 보기에 엄마는 촉감이 예민한 사람이란 거다.

"왜 이렇게 나는 피부가 간질간질한지 모르겠다" 엄마에게서 나도 모르게 세뇌된 어구이다.

애정 결핍에 자기 몸을 만지고 계속 긁적이는 사람이 아니라 몸에 닿는 모든 것에 대해 심지어는 공기에 대해서도 먼지에 대해서도 하루종일 간지러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런 엄마의 행동을 이해할리 만무하며, 혐오했음에 나는 죄송한 마음이다.

반성문을 쓰고자 시작한 글이 아닌데, 결국 오해로 인해 엄마께 상처를 끼쳤음을 인정하는 반성문이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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