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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Dec 29. 2022

옷입는 시간은 최악의 시간

예쁜옷을 입히고 싶은 엄마와 디테일에 열중했던 나

어린시절의 난 유난히 예쁜옷을 좋아했다.

남의 눈에 예쁜 것을 추구한건 아니고, 내가 느끼기에 완벽해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린애가 벌써부터 외모에 엄청나게 신경 쓰네라고 생각하겠지만,

한겨울에도 치마를 입고싶어하던 나는 스타킹 밑에 내복을 입으라는 엄마 말에 울퉁불퉁한 다리 촉감에 울부 짖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엄마가 떠 준 앙고라 모자는 머리가 간지러워서 절대 쓰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예전 가정폭력이 양육방식이었던 우리 어릴때, 엄마의 빗자루와 총채는 엄마의 보조일꾼으로 매일 아침마다 할일을 다했고,

나는 엄마에게 맞아 울퉁불퉁해진 다리를 내복대신 입고 그렇게 노내복 스타킹권을 획득하고 학교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나는 왜 이렇게 내 외모에 집착을 했을 까,

머리를 묶다보면 살짝 불균형이 될 수가 있고, 머리카락 하나 틔어나올수도 있는건데 그런 부분들을 참지 못했던것 같다.

예쁜 여자의 외모에 유난히 호감을 보여 엄마를 서운하게 만든 경험도 종종 생각이 난다.



우리엄마는 60년대에 태어난 사람으로, 아동심리나 양육방식에 대한 고퀄 접근을 하기보다는

엄마와 딸이라는 상하관념에서만 나의 행동을 해석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거기에 엄마 스스로 남자 형제들 틈 바구니에서 키워지며 획득한 남아선호사상에 의한 희생자로서 획득된 피해의식이 버무려져, 나의 행동에 대해


엄마를 무시하는 처사

라는 오명을 씌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이라 무시가 뭔지,엄마가 왜 그렇게 억울해하고 분풀이하는지 몰랐다.
그저 나의 옷입기시간의 행동 하나하나가 엄마를 화나게 하는
해서는 안되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며,
나 스스로 갖고 있던 예민한 감각에 대해
부정하고 부정하고 부정하리라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그렇게 사춘기를 맞이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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