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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Dec 29. 2022

알콜 중독이라 혐오하던 엄마를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Sensory Processing Disorder

Neurodivergent

한국 사람인 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용어였다.

그대로 직역한다면, 정신분열이라 오해할 수 있지만, 그 뜻이 아니라 신경이 한 곳으로 모아진 상태가 아닌, 여러갈래로 뻗어나가 처리가 힘들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ADHD, Autism Spectrum Disorder, Sensory Processing Disorder, Obssessive Compulsive Disorder 이렇게 증세를 나누어서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이를 모두 뉴로다이버전이라는 신종어로 한데 묶어 새 관점에서 보고자하는 움직임이 이 곳 캐나다를 비롯 미국 등 신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다.


엄마의 상태는 굳이 말하자면 이 중, 감각처리문제, 즉 센서리 이슈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루어 짐작한다.

다소 긴장을 많이 하고, 남들과 싸워야 할 순간에 얼어버리는 경향이 있었긴 하지만, 그 특징은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60년대 생 엄마가 그녀 스스로를 외부로 부터 보호하기도 했음에 틀임 없다. 그녀는 사회생활을 원활하게 지속적으로 했고, 빨래,설거지, 요리, 청소 등 가정일에서도 여타 전업 주부들에 비해 소홀함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정말 고단한 삶을 사셨던거다. 아빠가 뭐라 했던 것도 아닌데 엄마는 왜 그렇게 옴짝달싹 못하고 스스로를 괴롭혔을까하는 생각까지 든다.


한편,

자신의 촉각과 시각이 항상 각성된 상태이다보니, 불필요한 정보들도 "모두" 촉각과 "시각"으로 민감하게 흡수하다보니, 항상 괴로워했다.

스스로 감각을 필터링하는데 정교한 훈련을 받아야한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요즘 시대에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보니,

대충 효율성있는 방법으로 자신을 억누르고 단타로 단타로 살아왔던 것 같다.


감각 처리의 이상상태, 본인 피셜에 의하면, 알러지가 본인 스스로를 괴롭게 만드는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취한 감각이완법은 알콜이었다.

예민한 감각이 조금은 다운되는 상태를 그나마 본인이 숨쉴 수 있는 상태로 정의하셨던것 같다.


자기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직면할 수 없던 엄마는 얼마나 괴로웠을 까,




제 3자의 관점에서 엄마의 행위에 대한 이해가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엄마를 옹호하지는 않는다.

술을 마셔 골아 떨어져 있는 부모를 보고 크는 건, 아이에게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그것은 피경험자 입장에서 볼 때 분명 아동방임 및 학대 행위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마음에 미래에 어쩌면 평생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나 와 같은 서른 일곱살, 내 아이를 갖고, 내 아이들이 어느정도 커 학교에 가고, 학교생활도 성실히 해 내고 있으며, 나또한 사회에서 한명의 성인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깨달은 후에는 어느정도 그 때 부모가 왜 그랬을 까,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지만, 그렇게 되는 시각 직전까지 알콜중독자의 아이는 상처투성이 벙어리가슴을 마음 저 깊은 곳에 감추고 애써 부정하며 살아야하는데, 그런 상태로 맞닥들일 이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가 싸울 에너지의 80할은 이미 마음상처를 덮는데 소진해버리니, 사회에 나가싸울 에너지가 금방 고갈나버린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는 엄마가 너무나 싫었다.

풀어진 엄마의 눈을 보고 있으면, 세상살이에 실패한 사람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고, 그 모습은 결국 나의 미래 삶에 대한 절망감이나 우울감을 암시 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랑 다르게 생겼어, 엄마랑 성격이 달라, 라고 말하지만, 같은 여성으로서 나는 엄마의 자존감과 나의 자존감을 남몰래 동일시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일주일에 두번 세번 지나치게 네 다섯번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올 때에는 항상 아빠와 부부싸움을 했는데, 자신의 몸도 잘 가눌 수 없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삶의 무기력감, 아직 초등학생이던 나에 대한 무책임감, 아빠와의 관계에서의 정절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런 고민을 하며 나는 자라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아이인 나에게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집 엄마들은 맛있는 음식도 차려주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위로도 해주시고, 어디 재미있는데 같이 가 주기도 하신다던데...

그때 엄마에게서 본 무기력감과 패배감 죄책감,  상식함이 지금까지의 내게 성취에 몰입하고, 아이양육에 강박적인 모습을 낳게된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른집들은 아빠가 술을 마시고 와 엄마들이 고생할지언정, 엄마들을 정상이던데,

왜 우리엄마는 아빠도 안마시는 술을 마셔서 나를 창피하게 하나,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가...


내 마음이 왜 아파야하는지에 대한 뾰족한 이유를 찾지 못한 채, 그렇게 나는 엄마의 자존감에 물들어버리고 말았던 것 같다.


나는 대학생이 되면 집을 나갈거야

그 후엔 저 여자랑 연락도 안하고 살거야


사춘기가 되기도 전에 나는 독립을 꿈꾸었고, 엄마를 싫어하는 행위는 어린 초등학생아이가 안전하게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전략이었다.

비록 대학 졸업과 동시에 독립을 하고자하는 꿈은 경제적인 이유와 안전상의 이유로 이루지 못했지만, 졸업 후 급결혼을 통해 합법적으로 엄마를 비롯한 나의 원가족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10년간의 공백과 그 기간동안 뇌파가 선물한 자가정화작용에 의해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 감정을 적당히 여과하고 조금은 내 스스로 제 3자의 관점을 도입할 수 있는 시기가 왔고, 나 자신과 내 가족의 문제를 짚어보며, 반성하며, 앞으로 나아가기에 안전한 시간이 왔다.  실한 것은 물리적 독립은 심리적 독립을 낳는다는 것이다. 내가 나의 프로필에 써 넣은 "코디펜던시 탈출가"라는 것은 그것을 말한다. 알콜중독자가 부모가 되는 가정안에 살며, 아이로서 살 수 없고, 불안하며, 오히려 상대부모앞에서 술취한 부모를 지켜야하고, 한편 미워하고, 그 안에서 생존하기 위한 전략을 연구하는데 나의 아까운 시간과 노력 에너지를 쏟던것에서 벗어나, 정작 나를 위한 것에 시간과 노력, 에너지를 쏟을 힘을 구해내었다는 뜻이다.방향성없이 막연하게 내가 좋하는 것이 무엇일지부터 하나씩 두개씩 탐색하며 열심히도 해보고 설설하게도 해보며 나는 누구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진짜 나라는 사람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내리기로 맘 먹고 하나씩 하나씩 나를 추려나가고 있다는 거다.


이제야 나와 그녀의 삶을 조금 여다 볼 기회가 온 것이다.

만일 10년 후 쯤, 내가 이 글을 본다면 또 다른 관점에서 엄마를 조명할 수 있을 수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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