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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Dec 29. 2022

직장생활을 할 때의  나

각종 소리들로 멍해지는 내 모습

나는 전직 유치원 교사이다.

공부를 꽤 잘했지만, 특유의 고도긴장으로 나의 평소 모의고사실력보다 수능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상상도 못했던 서울소재의 4년제 여자대학교에 입학했다.

예상했던 바다. 나는 항상 실전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시험 문제 자체를 정확히 읽지못했으니까


이 또한 하늘이 내게 주신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의 재수권유를 뿌리치고, 어차피 해봤자 또 실전에서 그르칠것을 알기에 그냥 학교에 들어갔다.


어차피 학교가 내 인생의 명함이 되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노력한 양과 평소실력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 학교 이름을 봤을 때, 상당히 이미지가 좋았고, 이정도면 괜찮은 학교라 생각들 정도니까


과에서 공부를 꽤나 잘했던 나는 교수님의 추천끝에 학교소재의 유치원 정교사로 졸업하기도 전에 거의 취직이 되었으며, 심지어는 2곳의 교육기관에서 서로 나를 데려가려고 하기도 했다.


나름 경쟁력을 갖춘 인재라고 여겨 교수님은 대학원도 자기밑에서 지내기를 나름 푸시받기도 했다.


그랬던 나도, 일할 때는 영 딴판이었다.

한가지 고려했어야 했던 점은, 나의 청각이 예민하다는 점이었다.

정상적인 청각을 가진 사람도 아이들이 만드는 소리(우는소리, 웃는 소리, 말하는 소리, 소리지르는소리, 짜증내는소리, 뛰는 소리, 벽이 울리는소리, 공중의 공기소리)들로 인해 청력과 목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나의 경우에는 청감각이 상당히 예민해, 작은소리 큰소리 거르지 않고 저 멀리 멀리에 있는 소리까지 모두 다 흡수 한 후, 그것을 필터링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을 간과했다.


당연히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한 후 1시간 이상이 지나면 머리가 멍해지고, 귀에서 삐이 소리가 들리며 사고의 속도또한 더뎌졌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인다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공간에 압도되어 쩔쩔매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있자니 스스로 너무 화가 났다.

소리를 듣는 대로 피아노로 바로 연주할 수 있고, 개그맨처럼 성대모사를 잘 해 동화구연에는 으뜸이었던 교사였지만,

아이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부모상담을 하는 데 으뜸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들의 자율활동이라든지, 하루일과학습을 씩씩하고 박진감넘치게 수행하기에는 너무 벅찬 감각 기능의 소유자였다.


결국 나는 1년 반여만에 유치원교사 일을 스스로 관두게 되었고, 원장 또한 나를 잡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본질적으로 나는 나의 감각처리기능이 일을 관두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교사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 라고만 판단했던 것 같다.




나는 아이라는 존재를 너무 많이 사랑한다.

그들의 보송함은 나에게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을 다량 선물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나의 초등3학년인 작은 아이의 볼을 내 볼과 부비는 행동을 자주하는데, 그러고 있으면 하루동안 받은 스트레스와 긴장감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유치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을 너무 예뻐하는, 너무 사랑하는 선생님이었고, 아이들을 귀하게 여겨 주는 한 명몫의 사람이었다.

나의 감각 처리기능이 과업을 성취하기에 역부족이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고,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아이들을 섬기고 노력하는 교사였음을 아이들이 기억해준다면 더할나위없이 감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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