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사랑>이 이어준 '끝사랑' 꼭 잡기

현실의 벽 앞에서 서서히 서로를 지워냈던 우리가 다시 만나기까지

by YouOn

그 모든 이불킥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지 못하고, 애먼 것 쫓아다니며 무지몽매한 삶을 살고 있었을 테니까.(전편에 이어서...)


매일 같이 알콩달콩한 카톡을 주고받으며, '보고 싶다'는 말을 나누던 우리였지만, 아득히 먼 거리의 현실의 벽 앞에서 우리의 관계는 잠정적으로 저물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연말이 다가왔고, 예의 그 형식적인 "Happy New Year!" 새해 인사가 그 신호탄을 쏠 것만 같았다.


관계를 정의할 마땅한 기회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된 우리의 '연인 같은 대화'는 마치 서로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걱정 속에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마치 코로나로 인해 격리된 사람처럼, 우리의 만남은 그 언제가 될는지 알 수 없는 요원한 것이었다. 내년 4월에 한국에 올 예정이라는 그의 계획만이, 출렁이는 바다의 부표처럼 그 자리에 떠있을 뿐이었다.


조바심 나는 마음을 들키면 안 될 것만 같아, 나는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최대한 쿨하게 기다리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아침이면 로봇처럼 일어나 열심히 일하고 해가 지면 하루를 마무리했다.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든 잘 보내면, 곧이어 주말이 찾아왔고, 또 그 일주일을 잘 보내면, 월말이 다가왔고, 그 달들이 모여 어느새 3월 말이 되었다.



서로 어떠한 관계라고 명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그 세 달 동안 애타고도 불안한 마음이 하늘을 찔렀다. 그는 아직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그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혹시 나 혼자만 속 끓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가장 답답했던 것은, 어차피 근시일 내에 볼 수도 없는데 또다시 연락을 시도하는 것이 과연 서로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 깊은 마음이었다.


그 역시도 현실의 벽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섣불리 나에게 연락을 못 하는 눈치였고, 나 또한 한창 결혼을 생각해야 할 나이인 만큼, 멀리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좋은 시기를 다 놓칠 수는 없지 않냐는 주변의 조언에 호된 몽둥이질을 맞던 시기였다. 이런저런 현실의 벽 앞에서 애써 마음을 달래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에는, 3월 언저리쯤이 되면, 4월 며칠에 갈 것 같다고 한 번은 연락이 오겠지, 하는 실낱같은 희망 한 가닥이 가득했다.


까맣게 타들어가는 내 속은 아는지 모르는지 바깥 세상은 연둣빛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4월이 되었는데도 그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나는 이 묵묵부답을, 이역만리 떨어진 자기 말고 한국의 지근거리에서 또래의 좋은 남자를 찾으라는 무언의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결국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서서히 마음속에서 서로를 지워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중에서야 그에게 왜 그때 연락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봤다. 그동안 계속 생각은 났지만, 이미 3개월을 서로 아무런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던 터라, 갑자기 연락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고, 현실적으로 한국에서의 일정도 매우 짧은 나머지 차마 연락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잔인한 황무지 같던 달, 4월은 소리 없이 지나가버리고, 어느새 찬란한 봄 5월을 살아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여행지에서 예쁜 추억 하나 쌓았단 생각으로 위안 삼으며 쓴웃음 짓고 있던 날들이었다. 나는 원래 한창 유행이던 <나는 솔로> 따위의 연애 프로그램은 유치하다고 생각되어서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끝사랑>이라는 중년 연애 프로그램은 재미가 있길래 몇 화를 챙겨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의 그 이름, 마음속에 생매장시켜버렸던 그 이름이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그와 동명이인인 한 남자가 나와서 환하게 웃으며 자기소개하는 것을 보고, 잊고 살고 있었던 그가 흙 속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선 이것이 하늘의 계시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곧바로 그 자기소개 화면을 찍어서 그에게 보내버렸다. 아뿔싸, 주사위는 던져졌다. 과연 그에게서는 답이 올까...?


그에게서는 답이 왔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곧바로! 마치 어제까지 카톡을 주고받던 사람처럼 매우 부드럽게 이어지는 우리의 대화. 어떻게 지내고 있냐는 사심 가득한 메시지부터, 4월에는 왜 연락을 하지 않았냐는 투정 어린 메시지에 이르기까지. 다시금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끝날 줄을 몰랐다. 무려 다섯 달이 흐르는 동안, 그의 그리운 얼굴은 어쩔 수 없이 사진들로 대체되어 갔지만, 그의 나긋한 목소리와 커다란 손은 차마 대체될 수 없어서 마음속에서 늘 펄럭이고 있던 참이었다.


그가 보내는 따스한 메시지를 마주하고,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는 순간, 다시 내 마음속에서는 불이 지펴지다 못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현실이고 뭐고, 일단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다시는 놓치지 않고 꼭 붙잡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그가 나의 '끝사랑'이 될 것 같은, 나의 묘한 직감이 그 순간 나를 오묘하게 감쌌다. 그래, 결심했어! 나는 내 길을 간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