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운명은 흘러오겠지
열두 번째 마음,
거짓말은 그때부터 했다. 학교를 가고 있던 어느 가을 아침, 나무 밑에서 죽은 참새 한 마리를 발견한 날이었다. 겁이 나 얼른 지나가려다 순간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참새에게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고개를 쭉 빼고 살펴본 참새는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다친 곳 하나 없이 평온하게 누워있었다. 작은 아기 참새였다. 참새의 옆으로 노란 낙엽이 몇 장 굴러갔다. 꼭,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고민이 됐다. 누군가 못 보고 지나가다 참새를 밟으면 어떡하지? 큰 새가 와서 참새를 쪼아대면? 두 발을 동동 구르며 참새의 주위를 몇 바퀴나 돌았다. 빨리 학교 가야 되는데 참새를 혼자 두고서는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모두 그 날 벌어진 일이었다. 학교에 몇 시간을 늦은 것도, 온몸에 흙을 잔뜩 묻히고 간 나를 선생님께서 호되게 혼내신 것도, 죽은 참새를 산에 묻어주고 왔다는 말에 반 친구들의 얼굴이 사색이 된 것도 모두 그 날의 일이었다.
그런 일로 학교는 왜 늦으며 병든 새였으면 어떡하려고 그런 짓을 하느냐고, 선생님에게 혼이 나는 내내 서럽게 울었다. 혼내시는 선생님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이런 일을 하면 혼이 난다는 사실이 무서워서였다. 칭찬받지는 않아도 무섭게 혼날 만큼 잘못한 일일 줄은 몰랐는데. 선생님과 친구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두려웠다. 내가 아홉 살이었던 때, 거짓말은 그때부터 했다. 타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들이다.
더 이상 하지 않는 일들이 생겼다. 이를테면 비 오는 날 길 한복판을 느리게 가로질러 가는 지렁이를 풀밭 위로 옮겨주는 것. 또는 달려오는 자전거에 달팽이가 밟히지 않게 자전거가 다 지나갈 때까지 달팽이의 옆에서 걸음을 함께 해주는 것.
참새를 뒷산에 묻어주던 날, 나의 아홉 살도 깊은 곳에 묻었다. 때때로 길에서 죽은 지렁이나 달팽이를 볼 때면 묻어두었던 마음이 치고 올라오기도 했었지만 타인들의 시선이 곧 그 마음을 눌렀다. 나는 이제 그런 걸 봐도 아무렇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잘도 거짓말을 해왔었다.
며칠 전 한강 쪽으로 산책을 나왔던 날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는데 앞서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무언가를 피해서 반원을 그리며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뭔가 더러운 게 있거나 죽은 벌레가 있나 보다 싶어 꺼림칙했다. 멀리서 보기에 검고 큰 무언가가 있어 비닐봉지 같은 건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죽어가고 있는 비둘기였다.
어찌 된 일인지, 비둘기 한 마리가 길 위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산책로 그 한가운데서. 얼른 지나가고 싶었지만 마음과는 반대로 발이 점점 느려졌다. 결국 그 옆에 잠시 멈추어 서서 비둘기를 살펴봤다. 겉으로 보기에 다친 게 없는 걸로 봐선 어디에 치인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몸 안의 어딘가 아픈 것 같았다. 비둘기의 숨이 느리게 꺼져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제 몸 위로 사람들의 발이 가까이 스칠 때면 그 기척이 무서운지 날개를 두어 번 푸드덕거렸다.
고민이 됐다. 못 본 척하고 그냥 가자, 내가 데려다가 살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들도 다 그냥 지나가잖아, 이성이 나를 말렸다. 이미 본 걸 어떻게 못 본 척 해? 밟히지 않게 어디 옮겨줄 수는 있잖아, 하는 마음도 자꾸만 치고 올라왔다. 비둘기의 옆에서 머뭇거리기를 한참. 그 날의 기억이 기어코 나의 등을 떠밀었다. 제발, 제발 그냥 가자.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거야.
괴로웠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멀쩡히 잘 지나가고 마는 일로 나는 왜 항상 이러지 하는 자책도 들었다. 그런 덜 떨어진, 바보 같은 마음쯤은 분명 그때 깊이 묻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왜 아직도……. 비둘기를 피해 가던 사람들의 동선이 비둘기와 나를 포함한 동선으로 점차 커져갔다.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어딘가를 급하게 가는 중인지, 나에게 물었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옆에 누군가 있어 그 사람이 기다리거나 혹은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상황인가.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의 등 뒤에 줄곧 따라붙었던 생각도 물었다. 내가 비둘기를 옮겨주는 게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 보일까. 그 질문에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가 없었다. 맞아. 분명 나는 또 이상해 보일 거야. 지저분한 비둘기를 만졌다고 사람들이 경멸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볼지도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문득 어느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내가 오늘 한 일 중 좋은 일 하나는
매미 한 마리가 땅바닥에 배를 뒤집은 채
느리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 준 일
죽은 매미를 손에 쥐고
나무에 기대 맴맴 울며
잠깐 그것의 후생이 되어준 일
발아래서 퀼트처럼 알록달록 조각조각
교차하며 이어지는 상념의 나날들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
언젠가 운명이
흰수염고래처럼 흘러오겠지
모르는 사람들의 눈 때문에 내가 본 생명을 모른 척 외면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이렇게 또다시 내 마음을 저버리고도 나는 나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 있었다.
두 손으로 비둘기를 들어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서 조금 떨어진 풀숲에다 조심히 내려주었다. 난생 처음 만져본 비둘기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풀 위에 가방을 놓고 비둘기의 옆에 잠시 앉았다. 비둘기의 숨이 느리게 잦아들고 있었다. 나의 말을 알아들을 리는 없지만 비둘기에게 그런 말도 했다. 여기라면 괜찮을 거야.
바람이 불고, 풀잎이 흔들렸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무엇 하나 설명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그럴듯하게 나를 설명해내기 위해 억지로 꾸며왔던 내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동안 내가 등졌던 건 그 날의 마음만이 아니라 타인의 눈을 의식해 속여 왔던 숱한 나 자신이기도 했다.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 무릎에 얼굴을 묻으며 다짐했다. 그래. 인생이 설명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라면 설명할 수 없는 내 마음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아도 좋겠다. 그러니 더 이상 나를 속이지 말자. 내가 오늘 한 일 중 좋은 일은 비둘기의 마지막을 지켜봐 준 일. 그리고 비로소,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일이다.
저물어가는 해를 따라 비둘기와 나의 등 뒤로 노을이 졌다. 괜찮아. 이제 너는 괜찮아. 나는 너를 혼자 두지 않을 거야. 비둘기의 숨을 실은 바람이 느리게 멀어졌다. 다시 나에게 말했다. 괜찮아. 이제 나는 괜찮아. 그러니 나는 내 마음을, 다시는 혼자 두지 않을 거야.
* 나는 너를 혼자 두지 않을 거야.
* 시의 출처; 심보선, <좋은 일들>,
《눈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지성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