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버금 Nov 11. 2018

생애 한 번 뿐인 생일



스물두 번째 마음,

고맙다



  은숙아, 처음으로 네게 편지를 써.

  쑥스럽지만 오늘은 내 생일이잖아.     


  매 해 돌아오는 생일이지만 나는 어쩐지 생일을 맞을 때마다 항상 어색해. 일 년에 단 한 번뿐이어서 일까. 잊을 만하면 어느새 바람처럼 돌아와 있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생일을 맞을 때의 내가, 매번 다른 나이여서 그런 걸까.      


  두 손으로 세기에 손가락이 모자란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발가락까지 합쳐도 다 셀 수가 없는 나이가 되었어. 어렸을 땐 교복을 입으면 대학을 가면 운전면허를 따면 취직을 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모든 것들을 겪은 지금에도 여전히 어른이라는 단어와는 영 어울리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야.

   케이크의 초는 일 년에 하나씩만 늘어나는데 그 느린 속도를 따라가기도 나는 왜 이렇게 버거운 걸까. 내 나이대로면 이제는 어른으로 홀로서야 하는데 사실 아직도 그 역할이 마냥 무겁고 낯설게 느껴지기만 해.     


  그러다 그런 생각을 해봤어. 아직 걸어보지 않은 길에 남은 희망을 매달아보듯 혹 내가 결혼을 하면, 또 어쩌면, 나를 닮은 아이를 낳으면 그때는 정말이지 어엿한 어른이지 않을까 하고. 참 유치한 바람이지만 그렇게라도 아직 어른이 낯선 나에게 조금의 시간을 벌어주고도 싶어서.   

  

  은숙아, 그러다 나와 같은 나이의 네 생각이 났어.     


  그때의 너는 나와 닮은 얼굴로 교복을 입고 있어. 대학교에 입학하던 날엔 선배들과 동기들과 왁자하게 어울려 술도 마셨을 거야. 스무 살의 너도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빨간 하이힐을 신었을까? 아니야, 어쩐지 너는 짧은 단발머리에 멜빵바지를 입었을 것만 같아.

   이제는 누구도 묻지 않는 시간이지만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고 있는 사랑과 이별의 선연한 흔적들을 스물 둘과 셋의 마음에 새겼겠지. 그러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한 남자를 만나 그와 사랑에 빠지고 남은 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겠지. 다시 몇 번의 계절이 지난 이십여 년 전의 오늘, 내 생일에, 나와 같은 나이였던 너는 나를 낳았겠지.


  그때, 그때, 엄마.

  엄마는 얼마나 어른이었을까?     



 


  어린 딸을 어르고 달래던 앳된 얼굴을 나는 기억해. 주름 없이 통통한 분홍빛 손가락, 그 열 손가락에 깃든 다정한 손길을 기억해. 주근깨 박힌 얼굴로 허리를 젖혀가며 웃던, 내복 바지를 입은 어린 나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던 따뜻한 봄날을 기억해. 함께 주운 가을 낙엽을 코팅해 앨범에 넣던 노란 저녁을 기억해. 내가 처음으로 끓였던 설익은 라면을 맛있게 먹어주던 느린 일요일을 기억해. 떨어져 다친 나를 등에 업고 시장을 내달리던 겁에 질린 얼굴을 기억해. 아빠와 다툰 날, 수도꼭지를 틀어놓고서 몰래 흘려보내던 외로운 등허리를 기억해. 스물 일곱의, 꼭 나처럼 어른이 낯설었을, 나와 닮은 얼굴의 너를,

  나는 기억해.     


  은숙아, 처음으로 너를 네 이름으로 불러.     

  스물 일곱의 엄마가 나를 낳았던 오늘, 이제야 스물 일곱이 된 내가 엄마에게 편지를 써. 내 생애 단 한 번 뿐인 생일, 하나 뿐인 나의 오랜 친. 오늘 나의 엄마가 되어주어서 고마워.






*

흘러가는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하루의 감정을 한 단어로 기록하고 있어요.
 
*

<당신의 사전>의 소식을 한 발 빠르게 받아보고 싶다면 브런치를 구독하고 소식을 받아보세요 :)

매거진의 이전글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