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단상담 일기 05
어떤 날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개운하다. 잘 챙겨 먹지 않던 밥도 건강한 재료로 요리해 맛있게 먹고 싶다. 속 쓰린 커피보다는 따뜻한 차가 당긴다. 퇴근길에는 한 두 정거장쯤 일찍 내려 집까지 한들한들 걸어가고 싶다. 관심이 있던 영화를 보러 가거나 서점에 들러 좋아하는 책 냄새를 담뿍 맡기도 한다. 자기 전엔 따뜻한 물에 반신욕을 하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또 어떤 날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찌뿌둥하다. 밥 먹을 시간이 있으면 오 분이라도 더 자고 싶다. 후후 불어가며 먹어야 하는 맛없는 차보다는 대충 마실 수 있는 아무 커피가 낫다. 피곤한 퇴근길에는 얼른 집에 들어가고 싶다. 그렇게 들어가고 싶었던 집에 도착해서도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어쩐지 계속해서 든다. 자려고 누웠는데, 도무지 자고 싶지가 않다.
나의 일상은 대개 저 두 가지의 감정으로 돌아갔다. 전자의 것을 모, 후자의 것을 도라고 한다면 그 주기는 도도도모쯤. 어떤 날은 중간에 기분이 상하는 일이 생겨 모로 시작했다가 도가 되어버리는 ‘몯’도 있었지만 뭐, 어쩔 수 없지, 혹은 됐어, 내일이면 괜찮아지겠지, 로 위안을 삼으며 넘어갔다.
그러다 가끔씩 오늘 왜 이렇게 우울하지, 하고 끝없이 가라앉는 날엔 괜히 예능을 보거나 억지로라도 책을 읽었다. 우울한 감정은 깊어지기 전에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괜찮아, 내일은 행복할 거야.’, ‘힘 내! 세상은 아름다워!’ 힐링 에세이의 다정한 문장들로부터 위안을 찾기도 했다. 이유도 없이 불쑥 나타났다 사라지는 감정을 이길 수만 있다면 다정에 눈이 멀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 날은 ‘몯’이었다. 들을 수 있을 거라 기대도 하지 않고 갔던 수업을 듣게 됐고 심지어 그 수업이 마음에 쏙 들어 '모'가 연속으로 이어지던 행복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행복이 사라진 정도가 아니라 종일 기분이 나빴다. 교수님께서 나에게 되물으셨던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되풀이됐다.
“그 말은 왜 붙인 건가요?”, “설명이죠. 의도가 다분히 담긴 설명적인 말이에요.” 실제로는 하지 못할 말대답을 속으로 했다. 이대로 수업이 끝날 기세여서요! 저는 교수님 도와주려고 한 건데요! 그리고 아무리 심리학 교수님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의도가 다분히 담겼다고까지 함부로 단정하세요! 하는 식이었다.
한참 말대답을 하다 보니 혼자 허심탄회해지기까지 했다. 에이 뭐, 그래, 교수님께서 별 뜻 없이 그냥 하신 말씀인 걸 수도 있잖아? 하고 어깨를 으쓱했다가 근데 사실, 그 말도 맞긴 맞아.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다고 한 건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려고 붙인 말이긴 했지.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몇 번의 감정을 거치다 보니 화가 났던 나 자신이 도리어 낯설어졌다. 그런데 나, 왜 그렇게 발끈했던 걸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교수님의 한 마디에, 나는 왜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빴던 걸까.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하루종일 요동쳤던 나의 감정들을 순서대로 적어 내려갔다. 부끄러움, 분노, 상대에 대한 부정, 자기 자신에 대한 체념, 그리고 인정. 처음 알았다. 부정에서 인정으로 바뀌기까지 이토록 많은 감정을 거쳐서 왔다는 걸. 이전 같았으면 생각해 볼 노력도 않고 흘려보냈을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어 되새겼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순간엔 창피함에 불쑥 화가 났다. ‘아니, 어색한 분위기를 깨보려고 도와드린 건데 대체 왜 무안을 주시는 거야?’ 그리고 곧 부정을 했다. ‘알지도 못하시면서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단정하실 수 있지!’ 그 다음은 체념이었다. ‘사실 맞아. 설명하려고 했던 말인 건 사실이었어.’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나서야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 할 수 있었다.
마음은 하루에도 몇 백 번씩 생겨난다. 그러나 알아차리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대부분은 모양도 이름도 없이 ‘잘 모르겠는 기분’ 만 남겨놓고 사라진다. 마음의 이름을 모르는 채로 보냈던 나의 하루들이, 모 아니면 도에 불과했던 이유다.
나를 어지럽히는 감정을 들여다보고 그것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것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라도 감정은 이름을 깨닫는 순간부터, 나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스릴 수 있는 것이 됐다. “설명하지 말고 표현하세요.” 마음은 이성을 따르거나 이유를 들어가며 ‘설명’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표현’ 하는 것이었다. 모든 마음에는 이름이 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그 날 노트에 내 마음의 이름들을 쓰면서야 알았다.
노트에 적힌 마음의 이름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흔들리는 것이 두려워 마음 한 쪽도 내주지 않으려고 외면해왔던 이름들이었다. 모두 다 내 마음인데, 나는 매일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외면했던 마음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너는 분노구나. 너는 외로움이구나. 오랜만이야. 우울아. 그리고 그 이름 아래에 한 문장을 써넣었다. 마음은 마주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 노트를 덮어 가방에 넣었다. 매일 행복하지 않아도 좋을, 자유를 찾은 기분이었다.
06. 미해결 과제와 트라우마 (10/4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