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단상담 일기 06
전공이 뭐예요? 라고 물으면 뜸을 들였다. 국문학을 전공해요, 하면 그럼 국어 선생님 되는 거예요? 하는 질문이, 심리학을 전공해요, 하면 그럼 심리테스트 같은 거 할 수 있어요? 하는 질문이 따라왔다. 그 두 질문을 피하기 위해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지를 생각하느라 나는 자주 뜸을 들이곤 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국문으로 들어왔고 심리도 배우고 있어요, 라는 문장을 만들어 대답했다. 더 물으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지 그 말에는 다들 그렇구나, 라고만 했다. 언젠가 한 번은 누군가 되물었다. 왜요? 그 질문이 천진해 웃음을 터뜨렸다. 어떤 물음은 답을 알고 있어도 대답할 수 없다.
사색이 많은 성격을 타고난 데다 사는 방식도 그러했던 탓에 어렸을 때는 제 나이보다 어른스러운 아이로 자랐다. 사람의 사이, 사람의 감정에도 예민해 아픈 감정들을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안고 살았다. 심리학을 택한 데에는 학문 연구에 뜻을 두거나 상담에 꿈을 품은 것 때문은 아니었다. 허공을 떠돌던 피로한 마음의 끝이 과학에 귀결되기를 바랐다.
심리학이라는 과학적인 학문이 마음의 X축과 Y축을 제시하여 그 교점을 찾아내 자, 보렴, 여기가 너의 마음이란다, 하고 속 시원히 일러주기를. 지금 너의 상태는 이것이고 증상은 어떠하며 해결 방식은 무엇이라고, 나의 마음을 정확히 짚어주기를 바랐던 지극히 사적이고 이기적인 이유에서였다. 왜요? 라는 그의 질문에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사실은요, 마음 따위 다 모르고 싶어서 심리학을 배우고 싶었어요.
세 번에 걸쳐 생겨났던 깨달음들이 일상으로 스몄다. 알아차림을 알아차리기, 설명하지 않고 표현하기. 그리고 내 마음의 이름을 바로 아는 것이 그것이었다. 일상에서 어떤 일이 발생함과 동시에 그 일로 인해 나에게 어떤 마음이 생겨나는지를 함께 인지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조별 과제로 잠시 알았던 사람이 지나갈 때 인사할까 말까 망설이는 찰나의 순간, 전에는 그냥 인사하기 귀찮으니까 하지 말자, 고 생각하고 말았다면 이제는 나는 왜 인사를 귀찮다고 느꼈던 걸까? 하고 반문을 했다. 발표를 하기 위해 앞으로 나간 자리에서 눈동자가 모일 때 묘하게 위축되는 기분이 들면 나는 자신감이 부족해,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는 지금 어떤 이유 때문에 위축이 되었던 거지? 를 생각하게 됐다.
모든 감정들의 이름을 알면서부터 ‘지금 이 마음은 뭘까?’, ‘지금 이 마음은 왜 들었던 걸까?’ 하는 물음들이 곧바로 따라붙었다. 알고 있었지만 느끼지 외면했던 마음과, 모르고 있어서 느끼지 못했던 마음의 이름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점점 많은 마음의 이름들을 알게 되어 그 물음이 일상의 거의 모든 순간으로 번지면서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느라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기억해야 하는 것들을 놓치기도 했다. 일상을 일상처럼 보내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알아차림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졌다.
일상을 일상처럼 보내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알아차림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졌다. 그저 내 기분이 뭔지 잘 알아차리기만 하려고 심리학을 택한 것은 아니었는데. 아니, 오히려 이런 것 좀 모르고 싶어서 배우기 시작한 거였는데. 질문만 있고 답은 없는 문제와 맞닥뜨린 것 같았다. 마음에 이름이 있다는 건 이제 알겠는데, 그래서요? 이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교수님께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었다.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것은 다른 집단원의 자기 개방을 통해서였다. 어느 날의 수업 시간이었다. 늘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이었지만 매 수업마다 어떤 사람은 알아차림을 경험하고,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고, 어떤 사람은 이제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순서가 있어 돌아가면서 말을 하거나 정해진 대답을 해야 하는 수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집단원들의 반응과 자기 개방은 모두 다르기 마련이었다.
“저는 모르겠는데요.”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부정적이고 반대로 어떤 사람은 과하게 모든 것이 긍정적이었지만 그 집단원은 둘 모두도 아니었다. 어떤 집단원이 오래 고민했던 가족과의 갈등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는데, 교수님께서 갑자기 다른 집단원을 지목하시며 물으셨다. 늘 팔짱을 낀 자세로 앉아 유독 말을 하지 않았던 집단원이었다. “지금 이 집단원이 한 말에 대해서 무엇을 느꼈지요?”
수업을 하시는 동안 누군가를 지목하거나 특정하여 물으신 적이 없었는데, 무척 갑작스러운 전환이었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교수님으로부터 질문을 받은 집단원의 대답이었다. “저는 모르겠는데요.” 교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모르겠는 것은 없어요.”, “솔직히 제 일도 아니잖아요? 저는 모르겠어요.”, “아니요. 모르기를 바라는 거겠죠.” 여러 번 오가던 말이 교수님의 말씀으로 끝을 맺었다.
"미해결 과제예요. 모르는 것은 모르는 채로 두지 않아야 해요. 모르겠다면 왜 결국 모르겠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알아차림의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은 알아차림이 아니라 알아차리지 못함이었다.
어떤 물음은 답을 알고 있어도 대답할 수가 없다. 모르겠다, 는 말처럼 대답은 할 수 있어도 답을 알지 못했던 물음들도 그렇다. 알아차림을 경험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마음의 이름들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뒤집어 생각하면 모르는 것은 모르는 채로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대답할 수 없어 모르는 채로 묻어두고 외면했던 마음은 나에게도 있었다. 미해결 과제와 트라우마였다.
다음/눈물은 아프지 않다 (10/9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