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버금 Oct 09. 2018

눈물은 아프지 않다

나의 집단상담 일기 07


   언제부턴가 출석부의 첫 번째로 이름이 올랐다. 원래가 ‘김씨’라 기역니은을 따른 출석부의 순서에서 좀 윗줄이기도 했지만 ‘강씨’나 ‘고씨’에게 밀리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강씨’와 ‘고씨’가 있어도 굳건하게 일등의 자리를 지켰다. 수업을 듣는 사람 중에서 내 학번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휴학이 길었다. 휴학 기간 동안 무얼 했냐고 묻는 말엔 대충 웃어넘겼다. 무언가 대단한 걸 들려줘야 할 것 같은 부담도,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 것들을 주섬주섬 말했을 때 스치는 실망스러운 표정도 달갑지 않았다.


   전공을 물었을 때 대답용 문장을 만들었던 것처럼 휴학에도 대답용 문장을 만들어 가지고 다녔다. "네, 저는요. 여행도 하고, 영화관 아르바이트도 하고, 국토대장정도 하고요. 음, 기타도 치고, 플룻도 배웠는데, 아! 오토바이도 잠깐 배웠어요. 그리고 또……." 많은 것들을 나열하다 보면 교집합이 하나씩은 나온다. "와, 국토대장정은 어땠어요?"


   깊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주제 앞에서는 그냥요, 글쎄요, 모르겠어요, 라는 대답보다 오히려 장황하게 아무 말을 하는 게 나았다.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말하는 순간의 나도 알고 있다. 그냥요. 글쎄요. 모르겠어요. 는 사실 그냥도 아니고 글쎄도 아니고 모르겠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은 문득 찾아온다. 11월이었다. 캠퍼스의 대자보 게시판은 늘 갖가지 소식들로 북적였지만 선거 기간이 있는 11월에는 더 북적였다. '총학생회선거인단' 등의 보라색 도장들이 찍힌 자보들이 붙은 자리 위에 붙고 또 붙었다. 기호 1번, 무슨 과, 누구, 열심히 하겠습니다, 가 쓰인 포스터 옆을 지나면 학교 언덕에서 방금 전 포스터 속의 그 사람이 밝은 웃음으로 선거를 독려하는 모습이 보였다.


   포스터에서 한 번, 그 사람의 옆을 지날 때 또 한 번 마음이 철렁했다. 집단상담에서의 경험으로 지금의 신체적 반응들이 무의식의 감정을 인지하려는 상태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아직 그 감정을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그 옆을 재빨리 지나가서 피해버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강의실에 도착한 뒤 물을 한 잔 마셨다.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고 있으니 조금 안정이 되는 듯했다. 오늘은 내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평소와 같은 수업이었다. 어떤 사람은 오래 가지고 있던 고민을 말했고 그 고민을 들은 또 다른 사람은 그에 반응한 감정들을 말했다. 이야기의 흐름에 집중하려 하는데 마음이 붕 떠 주의가 자꾸 흐트러졌다. 앉은 자세를 조금 바꾸고 의자를 바짝 당겨보았지만 딴생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창 밖에서 선거를 독려하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커피를 연거푸 마신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오래 눌러왔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불안해서 숨을 잘 못 쉬겠어요."

   밤이 더 힘들어졌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공부도 곧잘 해 학기 말에 상장을 받는 날에는 상장을 여러 개씩 받아오기도 했다. 늘 반장을 맡았다. 뜻하는 바가 분명했고 주관이 뚜렷했다. 자기애와 자신감이 넘쳤다. 실패를 몰라 속도가 빨랐다. 넘어졌을 땐 크게 다쳤다. 긴 휴학을 하기 전, 내가 후보로 나갔던 총학생회 선거에서의 일이었다.


   학교와 총학생회의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학교가 숨기고 싶어 하는 이슈들을 총학생회는 열심히 캐냈고 열심히 알렸다. 그런 결정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학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학교는 학교 측과 긴밀한 협의가 된 학생을 총학생회 선거의 후보로 출마시켰다.


   나 또한 후보 중의 한 명으로 그러한 사실들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지만 정직하게 투표로 결정이 될 일이라고 생각하여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본 투표가 진행되기 전 조사했던 사전 여론 조사에서도 세 팀의 후보 중 우리 측의 지지도가 조금 더 높았다. 그 결과에 우리는 안심했지만 학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상식 밖의 결정이 지어졌다. 출마한 후보들의 자격을 박탈해 선거 자체를 무산시키려는 결정이었다. 후보들의 학점이 낮아 후보로서의 신뢰가 떨어진다는 것이 그에 대한 근거였다.


   후보 등록이 끝나고 선거 운동이 시작될 즈음, 학교를 갔다. 정문에서부터 걸어 들어오는데 바닥에 손바닥만 한 종이들이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한두 개가 아니라 강의실을 가는 길, 강의동의 로비, 엘리베이터, 화장실의 거울, 강의실의 모든 책상에까지 뿌려져 있었다. 의아한 마음에 종이를 한 장 주웠다. 그 종이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총학생회 출마 후보 김버금은 후보의 자격이 없음을 밝힌다. 그 이유로는…….'

   그 날 하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종이의 문구가 기억의 마지막이다.



   다음 날부터 학교를 가지 않았다. 학사 경고를 두 번 받았다. 책을 멀리 했고 펜을 잡지 않았다. 휴학을 했다. 일 년이 이 년이 됐고 이 년이 삼 년이 됐다. 밤이 더 힘들어졌다. 어떤 밤은 너무 길게 자라나 손톱깎이를 가져다 뚝 뚝 잘라내 어두운 곳 깊숙이 묻었다. 이 고통을 마주하느니 차라리 영원히 묻어두는 것이 나를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기분이 어때요? 내 몸의 증상이 어떤지 알아차려 보세요."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꺼낸 나에게, 교수님께서 물으셨다. 무릎이 덜덜 떨리고 목 아래에서 울음이 올라왔다. 그동안 여러 번 들어왔던 질문이었지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감당하기 벅찬 감정이 나를 다치게 할까 봐 주먹을 쥔 채로 울음을 꾹 참았다. 창 밖에서는 선거 운동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아이들은 아무것도 몰라요."


   저 아이들은 '과거의 나'이자, '미래의 나'가 될 아이들이기도 했다. 그토록 아무것도 몰라서, 함부로 권력과 집단에 맞섰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 고개를 떨궜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동의하려던 찰나 교수님께서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그러나,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지요. 나는 어른임이 부끄러워요. 분명 그것은 어른들이 힘으로 행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어요. 어른으로서 사과해야 하는 일이에요. 버금 학생이 받았을 상처를 깊이 이해해요. 견디기 힘들었을 아픔이라는 것을 나는 공감하고 있어요."



   어떤 기억은 기억하지 않는 기억이 된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묻어버리기를 택한 기억들이 그렇다. 그 이름이 미해결 과제거나 트라우마라도 그런 심리학적 명명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눈물이 나를 아프게 할 것 같았다.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함부로 떠올려, 내 마음에 내가 다치게 될까봐 두려웠다. 무의식의 저편 아주 깊은 곳에 묻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아픔은 묻어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기분이 어때요?”



   교수님의 물음에 묻어두기 위해 외면해왔던 아픔들이 사실 많이 아팠다고, 슬픔이 못 견딜 만큼 슬펐다고 말했다. 그 날 나는 꼭 견뎌온 시간만큼 울었다. 아프고, 슬프고, 괴로워서 다시는 생각하기 싫고, 이런 것들 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싶다고 토해내듯 말했다. 가진 모든 것을 비운 뒤, 코끝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생각했다.


   눈물은 아프지 않다.

 




 다음: 지금-여기에 나를 비추다 (10/11 완결)

 

 


  

매거진의 이전글 미해결 과제와 트라우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