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버금 Oct 15. 2018

지금, 여기에 나를 비추다

나의 집단상담 일기 완결


   상장을 받는 걸 좋아했다. 그중 가장 좋아했던 상장은 단연 글쓰기 상장이었다. 독서왕 상이 '내가' 책을 많이 읽었다, 의 느낌이라면 글쓰기 상은 내 글을 '누군가' 좋아해 준다는 느낌이랄까. 내가 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에 더해 그 사람이 나의 글을 좋아해 준다는 것은 상장을 받는 일보다 더 벅차고 뿌듯한 일이었다.


   꿈처럼 글을 꾸었다. 부끄러워 내놓고 말할 만큼의 꿈은 아니어도 가끔 늦도록 뒤척일 때 한 번씩 몰래 아껴 떠올리던 꿈, 불안도 곤히 잠재워주던 그런 꿈 같은 꿈. 무럭무럭 자란 나는 국문과를 갔지만 다시는 글을 쓰지 않았다. 밤이 더 힘들어졌던 때, 어두운 그림자만 자라났던 탓이다.


   후유증이 무서운 병들이 있다. 아팠을 때는 보이는 만큼만 아픈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깊게 파고 들어가는 병이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 크기는 같아도 깊이가 다르다.


   휴학 전 학교에서의 기억은 그것이 마지막이었지만 그렇기에 평생 기억하게 된 기억이기도 했다. '자격 없음'은 비단 후보라는 자격의 실격만이 아니라 인격을 실격하는 선언과도 같은 말로 남았다.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고 했지만 사실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것이 더 정확하다. 그 종이가 학교의 교문에서부터 내가 듣는 강의실의 책상 위에까지 놓여있었으니까. 그것과 멀어지기 위해 휴학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등 뒤에 자라난 나의 그림자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더 이상 전처럼 살지 않겠다. 삶의 방향을 새로이 잡았다. 말과 글은 무용한 허상에 불과했으며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 이상 이런 허상을 믿지 말아야 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과는 정반대의 것들을 골라했다. 살아보지 않은 방식만이 나를 살게 할 것 같았다.


   책을 읽지 않았고 글을 쓰지 않았다. 나를 혐오했고 아무것도 모르고서 떠들어댄 내 말과 글은 더욱 지독하게 혐오했다. 모아놓은 일기장을 버렸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험한 곳으로 여행을 다니며 방황했다. 삼 년의 시간이 지나 더 이상 휴학이 불가해졌을 때에야 떠밀리듯 복학을 했다. 그렇게 오래 돌고 돌아 학교로 온 나에게 교수님께서 물으셨다.


   "그래서 지금 기분이 어때요?"


   15주의 시간 동안 잘 몰랐던 기분의 이름을 알았고 모르고 싶어 외면했던 기분의 이름도 알아갔다. 그러나 글을 외면했던 시간, 나의 그림자를 따돌리기 위해 내달렸던 시간은 마지막까지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집단상담 실습은 시험 대신 리포트를 제출해야 하는 수업이었다. 글을 등지고 살았던 나로서는 글을 쓰는 일이 시험보다 막막한 일이었다. 제출일을 하루 남겨둘 때까지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새벽을 꼬박 지새웠다. 나는, 이라는 말만 수십 번 썼다가 지웠다. 아직 글을 쓸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가 앞으로 절대 글을 쓸 수 없을 거란 생각까지 했다. 깜빡이는 커서를 따라 심장이 요동쳤다. 압박감이 심해 밤새 토를 두 번 했다.


   검은 밤하늘이 푸른색으로 물들어갈 무렵, 결국 노트북을 접고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갔다. 수업은 이대로도 충분했으니 부담이 되면 제출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찬 바람을 맞으며 늘어진 가로등을 따라 새벽길을 무작정 걸었다. 발 밑을 보니 한 발을 떼면 그림자도 한 발을, 다른 발을 떼면 그림자도 다른 발을 뗐다. 내가 빨리 걸으면 빨리 다시 느리게 걸으면 느리게, 나와 보폭을 맞추며 걸었다. 혼자 걸었지만, 완전한 홀로는 아니었다. 


   주위가 고요했다. 그림자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보다 잠시 멈추어 섰다. 그림자는 나와 등을 마주대고 있지만 나와 같은 방향으로만 걷는다. 그동안 줄곧 등져왔던 것이 나의 글이라면, 그림자가 나의 글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문득 스쳤다. 


   방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의 커서가 깜빡였다. 나는, 을 썼다. 깜빡이는 커서를 따라 잠시 숨을 골랐다. 이어서 지금, 을 썼다. 마음에 고여 있던 말들을 꺼냈다. 나는 지금 쓰고 싶지 않다, 고 썼다. 그리고 왜냐고 되물었다. 나는, 그러니까, 왜냐하면 ……. 스탠드 아래, 노트북의 화면이 눈부시게 환했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은 대로 손 아래에 손바닥 모양의 그림자가 졌다. 그림자는 어둠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빛이 있어 생기는 것이었다. 나의 글은, 그림자의 손을 맞잡아야 쓸 수 있는 것이었다. 글을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더듬더듬 글을 써나갔다. 한 글자를 쓰기까지는 몇 시간이 걸렸지만 다 쓰는 데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마감 시간이 몇 분밖에 남지 않아 퇴고도 하지 못한 날 것의 글을 그대로 제출했다. 그리고 그 수업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그 간단한 물음에 대답하게 되기까지 꼬박 몇 달이 걸렸다. 나는 나를 숨기는 법만 알았다. 내 기분이 어떻든, 나는 나를 외면하는 법만 여태 알았다. 나를 표현하는 말과 나를 드러내는 글은 오래 묻어두었던 나의 아픔을 직시하게 했다. 그러나, 아픔은 직시할 때에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었다.


   리포트를 제출하던 순간의 나는 기뻤을까. 아니면 울었을까. 그때의 기분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해의 가을, 집단상담의 첫 수업을 들었던 날이 떠올랐다. 무슨 수업인지 알지 못한 채 수강 신청도 하지 않고 들어왔던 수업이었다.  


   “그 수업 어떻게 됐어? 언니 받아주신대?”     

   “당연하지.”

   “그래서 진짜 꿀이야?”


   그때는 말을 삼키고 말았었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표현하지 않았던 그 마음을 꼭 말하고 싶다.     


   “나는 오늘을 위해 그동안의 생을 견뎌온 것 같아.”








   *생을 견딜 수 있도록 해주신 교수님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물은 아프지 않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