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잊었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다시 시작된다
스무 번째 마음,
향수를 좋아한다. 싱그러운 시트러스 향부터 만개하는 꽃처럼 우아한 플로럴 향, 묵직하고 중후한 우디 향, 막 샤워를 마친 것처럼 가볍게 날리는 스킨 향까지. 그러나 아무리 향이 좋은 향수라도 한 곳에 모아놓고 맡으면 어쩐지 향기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지러이 엎질러져 있는 모양 같아 잠시 맡았을 뿐인데도 콧잔등이 매워지기까지 한다.
좁은 엘리베이터였다. 내릴 곳이 꼭대기 층에 있어 제일 안쪽에서 서있었다. 한 층씩 올라갈 때마다 한 명이 타고 서너 명이 내렸다. 문이 열리면서 갖가지 향수 냄새와 더불어 땀 냄새, 고기 냄새, 귀퉁이가 닳은 지갑의 가죽 냄새가 훅 끼쳐왔다. 향수를 한 데 줄지어 늘어놓고 맡는 것처럼 금세 코 끝이 찡해졌다.
꼭대기 층에 다다랐을 땐 나와 내 앞의 한 분만이 남아있었다. 지독한 향이 다 빠져 나간 틈을 타 숨을 크게 돌렸다. 먼저 내리시길 잠시 기다렸다가 맨 마지막에 나오는데 그 분이 머물렀던 자리에서 익숙한 향이 났다. 그가 즐겨 쓰던 섬유유연제 향이었다.
한 발짝 늦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지나간 사랑에 관해서라면 가진 말 끝이 추레해 잊었다는 말로 잘라냈다. 이제는 눈에서 멀어진 지 오래, 마음의 거리도 그만큼이나 멀어졌을 테니 더 이상 떠올리지도 않는다고 자랑처럼 말하곤 뻣뻣하게 침을 삼켰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을 기적으로 여겼으나 그 명제에 후각은 해당이 되지 않는 것은 알지 못했다. 기억은 쏟아진 향수처럼 한꺼번에 밀려왔다.
익숙한 향의 뒤로 익숙했던 것들이 떠오른다. 잃는 것과 잊는 것 사이에서 헤매었던 시간의 틈 사이로 돌아간다. 꾹 꾹 눌러쓴 이름과 잘 자, 라는 사소함을 영원으로 착각했던 시간으로 돌아간다. 사람의 이름이 낱말로 부서지고 붉게 앓던 얼굴이 흑백의 색으로 풀어지는 곳으로 떠밀리듯 돌아간다. 밀려오는 기억들에 코끝이 자꾸만 매워졌다. 향수 때문이라고, 지독한 향수 때문이라고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느리게 닫혔다. 섬유유연제의 향이 멀리 흩어졌다. 떠나는 사람은 언제나 발 뒤에 자국을 남겼고, 지나간 기억은 언제나 다 잊었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다시 시작됐다. 한 발짝 늦게 다가오는 것들은 그랬다. 언제나 한 발 뒤에서 울게 만들었다.
* 매일의 감정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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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사진 ⓒ 2nd_ro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