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버금 Oct 29. 2018

내가 너를 이해할게

이해라는 이름의 상냥한 폭력



스물하나 번째 마음,

이해하다



   연인 사이나 친구 사이, 가족들의 사이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마음은 이해의 마음이다. 이해라는 마음은 그렇다. 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생겨나는 겹의 마음이다.  


   한때는 이런 까닭에 이해가 타인을 향한 배려의 마음이라 여겼던 적이 있었다. 그의 입장이 다른 것 같아도, 혹은 그의 입장이 틀린 것 같아도 내 나름으로 그를 이해하기. 그러기 위해선 충분한 대화가 필요하고 또는 약간의 논쟁이 오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그러다 가끔은 부끄럽게도 그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결국 내가 이해하겠다는 명목을 앞세우기도 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해라는 이름에 낯선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를 이해할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그가 이해를 묻고 싶지 않음에도 어떻게든 서로를 이해하자고 다그치는 태도가 과연 배려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이해한다는 혹은 이해해보겠다는 위선의 위압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온전한 이해가 아니었다.


   그것을 깨닫고 난 뒤로 나는 전보다 조금 포기가 빠른 사람이 되었다. 이해에 대한 포기가 아니라, 배려를 가장한 고집에 대한 포기다. 이해를 묻고 싶지 않은 사람의 입장을 더 섬세하게 존중하고 이해할 준비가 되지 않은 나 자신을 조금 더 영민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다.


   마음에도 사람의 사이에처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이해는 때때로 하지 않음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 매일의 감정을 기록합니다. 
* 말글 ⓒ your_dictionary_ 
* 그리고 사진 ⓒ 2nd_roll



매거진의 이전글 한 발짝 늦게 다가오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