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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버금 Sep 10. 2018

한 발 느린 자전거 수업

아빠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나이



열한 번째 마음,

애틋하다




   털털 거리며 돌아가던 선풍기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말고 힘겹게 끽끽 거리는 소리를 냈다. “야, 선풍기 머리 좀 한 대 쳐봐, 시끄러우니까.” 수박을 먹고 있던 평범한 여름날의 저녁이었다. 동생의 뜬금없는 말이 나오기 전까진.


   “아빠, 나 자전거 가르쳐줘.” 부탁의 대상이 된 아빠도 놀랐지만 얼떨결에 들은 나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줘’로 끝나긴 하지만 어쩐지 선포와 같은 그 비장한 말의 무게가 놀랍기도 했고, 그 말을 하는 동생이 이미 스무 살은 진작 넘은 다 큰 애였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배움에 무슨 나이가 있어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라는 말로 타인도 나 자신도 위로하며 살아왔다지만 자전거를 배우겠단 동생의 말에는 좀스런 마음이 먼저 들었다. 아니, 쟨 운동 신경이 제로에 가깝다 못해 마이너스를 찍는데, 그리고 집에 자전거도 없고, 하는 핑계들부터 불쑥불쑥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이제 와 뜬금없이 자전거를 배우겠다며 나이 든 아빠를 괜히 부려먹는 게 영 탐탁지 않았다. 자전거는 앉아서 배우는 사람보다 뛰면서 가르치는 사람이 더 힘든 일이다.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그제는 이가 아프다, 어제는 무릎이 시리다, 오늘은 어깨가 아프다며 온 군데가 돌아가며 아픈 아빠였다.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치는 그런 아빠의 역할을 하기엔 아빠의 나이가 너무 많았다.


   야, 갑자기 무슨 자전거? 그냥 나 예전부터 배우고 싶었어. 뭐래, 너 못 타잖아. 초등학생 때 몸 가벼울 때도 못 탔는데 무슨 이제 와서. 뭐? 나도 세 발 자전거까지는 좀 탔어, 하는 자매의 논쟁이 오갔다. 그래도 자신이 없었던 건 동생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대로 넘어갈 듯했는데 아빠가 대뜸 오케이를 외쳤다. 그래, 내가 가르쳐줄게. 하는 단순 명쾌한 수락이었다.



   그 길로 그 주의 주말에 아빠와 동생은 자전거를 빌려 월드컵 공원으로 나갔다. 온도도 습도도 최고치를 찍는 8월의 땡볕. 더우니까 해 지고 가라는 나의 만류에도 어두워지면 위험하다며 아빠는 일찍부터 채비를 했다. 그냥 둘이 보낼까 하다가 심심하다는 핑계로 나도 같이 따라나섰다. 여차하면 아빠는 그냥 쉬라고 하고 못 이기는 척 내가 가르쳐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른 오전 이 날씨에 자전거 타러 나오는 건 우리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많은 가족들이 삼삼오오 나들이를 나와 있었다. 신기하게도 대부분이 아빠가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앙증맞은 자전거를 탄 아이들 틈에 아빠와 동생도 자전거를 세우고 자리를 잡았다. 딴 건 몰라도 우리 아빠랑 동생이 나이로는 이미 일등이네. 그늘 밑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생각했다.      



   “자, 여기 페달에 한 발을 먼저 올리고.”

   “이렇게?”

   “그렇지, 잘하네.”

   “아빠, 잘 잡고 있는 거 맞지?”

   “어, 괜찮아. 아빠가 꽉 잡고 있어. 쭉 밟아봐.”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었던 것도 아빠였다. 그때처럼 아빠는 동생의 자전거가 비틀거릴 때면 부리나케 뛰어와 핸들을 잡아주었고 힘주어 페달을 밟을 때면 그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몇 미터씩을 더 뛰기도 했다.

   그러나 날쌔게 움직이던 것도 잠시, 무릎에 손을 짚은 채로 숨을 고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역시 이제는 나이가 있어 힘들겠지 싶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천천히 걸어갈수록 낯선 풍경이 눈에 가까워졌다. 





   어린 아이들보다 두 배는 훌쩍 큰 동생이 자전거에 어설픈 자세로 올라타 있다. 흰머리가 성성한 아빠가 구슬땀을 흘리면서 자전거의 안장을 잡고서 뛰고 있다. 안장을 몰래 놓고 있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더니 아빠가 슬쩍 손을 뗐다. 아빠, 잡고 있지? 어, 잡고 있어, 하는 전 국민이 다 아는 거짓말도 해가며.


   비틀거리던 동생이 곧 중심을 잡더니 어설프게 페달을 돌렸다. 그렇지, 잘하네. 아빠가 웃었다, 그때처럼. 팔월의 해가 눈부셨다. 그 웃음에 걸어가다 말고 우뚝 섰다.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치는 그런 아빠의 역할을 하기엔 아빠의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이제는 아빠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는 게 아빠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철없는 내 모습이.


   자전거가 멀리 나아간다. 눈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 지켜보고 있던 아빠가 슬쩍 뒤로 돌아 땀에 젖은 이마를 손등으로 얼른 훔쳐냈다. 그 모습이 자식이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아빠의 모습 같아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동생이 뒤늦게 자전거를 배우던 날, 나도 뒤늦게야 배웠다. 아빠라는 이름에 너무 많은 나이란 없다는 것을.


   사방에서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만 쉬라고 말리려다 말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생각했다. 얼른 저 수업이 끝났으면. 그래서 나도 아빠한테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나 사달라고, 오랜만에 어리광이나 한 번 실컷 피워봤으면.






* 매일의 감정을 기록합니다.

* 말글 ⓒ your_dictionary_   
* 그리고 사진 ⓒ 2nd_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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