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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버금 Dec 10. 2018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건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스물여섯 번째 마음,

사랑하다



   입는 옷의 팔이 길어지는 가을이 소매 끝에서 떠나가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는 겨울이 다시 손 끝에서 왔다. 집을 나설 때 신발에 발을 꿰고 바닥을 탁탁 두드리면 올라오는 차가운 공기, 현관문의 문고리를 잡을 때 느껴지는 간밤의 푸른 온도처럼 추위는 피부로 성큼 다가온다.



   겨울은 으레 추운 법이라지만 귀가 빨갛게 달아오를 만큼 추운 날이 되면 유독 뭉치 생각이 난다. 뭉치를 처음 보았던 날도 날씨가 오늘처럼 무척 추웠을 때였다. 계절상은 봄이어도 새벽에는 영하를 기록할 만큼 매서운 날씨여서 롱패딩에 목도리를 칭칭 두르고서 집을 나서던 길이었다. 주차된 차 밑에 오도카니,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보통의 고양이들이라면 차 밑에 안 보이게 숨어있거나 앉아있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재빨리 피했는데 이 고양이는 조금 달랐다.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나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홀려 잠시 눈싸움 같은 눈인사를 하다가 손을 내밀었더니 조그만 코를 가져다 댔다. 고양이에게 처음 물었다. "너는 이름이 뭐야?"



   고양이는 풍성한 흰 털을 가진 고양이었다. 길 생활을 오래 했는지 흰 털이 회색 털이 되었고 빗질을 하지 않아 군데군데 털이 덩어리 져 엉켜있어도 페르시안 종의 고양이인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고양이에 관해서는 잘 몰라도 이런 고양이는 분명 주인이 있는 고양이일 것 같았다. 누군가 애타게 찾고 있을 것 같아 '집사'인 친구에게 부탁해 고양이 사이트에 주인을 찾는다는 글을 올리고 혹시 몰라 다른 유기견, 유기묘 사이트도 부지런히 둘러봤다.


   내가 고양이를 발견했던 건 3월 무렵이었고 이 고양이를 발견했다는 글들은 12월부터 올라와 있었으니, 사진 속 고양이가 같은 고양이가 맞다면 고양이는 겨우내 줄곧 떠돌이 생활을 해왔던 듯했다. 사이트에는 매번 고양이를 발견했다는 글만 있을 뿐 주인이 나타난 적은 없었다. 한파에 수도관이 터지고 롱패딩이 불티나게 팔리던 겨울이었다. '앙상한 페르시안 고양이를 봤어요' 하는 글들을 따라 읽으며 고양이의 고된 삶의 행적을 머릿속으로 여러 번 가늠했다.


   며칠이 지난 뒤, 동생에게 고양이 이야기를 꺼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런 생각이 없어서 드는 막막함 때문에 절로 이야기가 나왔다. 그날 밤 동생과 나는 두툼한 옷을 껴입고 고양이의 거처를 살피러 갔다. 핸드폰의 손전등을 켜고서 차 밑을 들여다보니 바퀴 뒤로 얼어붙은 물과 사료 몇 알이 굴러다니는 밥그릇이 보였다. 그래도 챙겨주는 사람이 있나 보다, 하고 고양이를 두고서 집으로 오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집은 따뜻했지만 마음 한 켠이 오슬오슬 추웠다. 침대에 누워있어도 자꾸만 고양이 생각이 났다. 그 고양이는 오늘 밤도 추위와 홀로 싸우고 있을 것이다.


   결국 다음 날 우리는 '주인을 찾아줄 때까지 만이라도 데리고 있자!'는 결심으로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사실 주인을 찾아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없었지만 데려오기 위한 핑계가 무엇이라도 필요했다. 데려오는 과정도 보통은 포획에 가까운 과정으로 데려온다는 글을 여럿 보았는데 다행히도 순한 고양이라 순순히 안겨주어 품 안에 안아서 데리고 왔다.

   집에 무사히 데리고는 왔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나도 동생도 고양이는 처음이라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배변 패드를 쓰는 강아지와 달리 고양이는 모래가 있는 화장실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도 그 날 처음 알았으니. 강아지에 대해서라면 오래 키워봤던 만큼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있었지만 고양이는 전혀 아니었다.


   꼬리를 바짝 세우고서 다가오는 건 어떤 뜻인 거며 나를 보고 자꾸 야옹야옹 우는 건 왜 그런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고양이를 세 마리 키우는 친구에게 "그... 고양이가 자꾸 우는데 왜 우는 걸까?" 물어보아도 "글쎄, 그게 고양이마다 다 달라서……." 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고양이에게 궁금한 건 많은데 물어볼 수가 없으니 정말 답답했다.


   이름이 뭐야? 주인은 어디 있어? 그동안 밖에선 어떻게 산 거야? 아니 그보다, 어쩌다 혼자 차 밑에서 살게 된 거야? 그동안 밥은 어떻게 먹고... 이렇게 추운데... 그동안 넌 어디서 어떻게...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게 한 트럭이었지만, 고양이에게 물을 수는 없는 일.


   결국 우리는 함께 살면서 하나씩 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네가 어떤 사료를 좋아하는지, 화장실의 어떤 모래가 네게 편한지, 어떨 때 기분이 좋은지, 어디를 쓰다듬어주는 걸 좋아하는지도. 그 뒤로 고양이에게는 뭉치라는 이름이 생겼고 서툴지만 부지런히 애를 쓰는 가족이 새로 생겼다.



  손 끝과 발 끝에서부터 오는,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오늘은 집을 나서기 전에 고양이를 쓰다듬다 문득,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이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아픔이 있는지, 어떤 꿈이 있는지. 나는 그에 대해 그에게 물을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함께 사랑하면서 알아간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떨 때 행복한지. 사랑을 하면서 그를 알아가고 그러면서 나도 하나를 알아간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함께 사랑하면서 알아가는 것, 고양이와 함께 살며 배운 사랑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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