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방법을 잊은 당신에게
번아웃란 무엇인가. 자못 야심찬 르포형 글 연재의 시작을 알려놓고 바람처럼 사라진 김버금. 번아웃을 극복하겠다는 포부 아래 새 연재를 기획하였으나 번아웃 때문에 번아웃 글을 쓰지 못했다. 이 얼마나 지독한 입증인지. 이로써 내가 번아웃, 그리고 그것의 단짝인 나태지옥, 에 있다는 것은 재차 확인하였으니 그것으로 되었다고 위안을 삼으며 툭툭 털고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아, 참 오랜만이야.
이전에도 썼던 적이 있지만 나는 불규칙적인 생활을 규칙적으로 한다. 불규칙적이어야 가능한 유동적이고 탄력적인 생활 방식이 편하고 체질적으로 그런 방식에 큰 피로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다 작년에는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예측불허한 방식의 출간 방식을 택했으니 불규칙을 규칙적으로 일삼아야 했던 생활을 몇 달이나 반복하며 살았다. 그렇게 겨우 겨우 펀딩을 다 끝마쳤을 무렵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쉬는 날만 기다려왔는데 막상 쉬려니까 잘 못 쉬겠는 기분이랄까. 쉬는 방법을 완전히 까먹은 것이다.
당황스러웠지만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쉬는 게 뭐 별거랴. 처음 한 두 주까지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곧 쉬는 것이라 생각하고 문자 그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지냈다. 침대에 누운 모양따라 몸이 엿가락처럼 늘어질 만큼 먹고 쉬고 밀린 잠을 잤지만 날이 갈수록 무력감만 늘었다. 분명 몸은 몇 주째 쉬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관성의 법칙처럼 계속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긴장 상태가 계속되었다. 쉴 수 있을 때 빨리 쉬어야 하는데 몸은 쉬어도 머리는 어떻게 쉬어야 하는 건지! 이 양극단의 괴리를 견디느라 몸도 머리도 몇 배로 피곤했다.
네이버에 '번아웃'과 '번아웃 극복 방법'을 검색하니 뜨는 글만 수백 개. 이대로 따라 하다간 인생이 아웃되어버릴 것 같아 한 가지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능동적인 휴식'이란 키워드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능동적인 휴식을 하기 위해 처음으로 했던 일은, 더 이상 휴식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푹 쉬려고 했던 행동들이 쉬는 것과는 정반대로만 갔던 것을 깨달은 나는 쉬는 것을 곧바로 멈췄다. 지금껏 쉬기 위해 했던 것들이 휴식이었든 아니든, 휴식의 행위가 나를 더 지치게 하고 있다면 구태여 휴식을 강요하거나 지속할 필요는 없다.
쉬는 것을 멈추기 위해 나는 지금의 상태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오래된 긴장 상태가 끝났고 지금의 상태로는 건강하게 쉴 수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일이 끝났으니 쉬는 게 맞고 쉬어야만 편해질 수 있다는 휴식의 강박 상태를 벗어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그렇게 하고 나니 그 다음에 할 일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일 때문에 망가졌던 일상의 리듬을 회복하는 일이다.
배를 깔고 누워 동그란 모양의 생활계획표를 짜던 시절로 돌아가 보자. 중학생 쯤이 되었을 때부터 생활계획표를 짜는 게 유치해보여 시간 순으로 칸칸이 나뉜 '플래너'를 짜곤 했었지만, 사실은 동그란 생활계획표가 일상의 리듬을 더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계획표일 수 있다. 생활계획표를 피자 모양으로 쪼개어 일과를 나누는 것은 하루의 흐름과 리듬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번아웃을 겪은 사람들의 경우 일상의 리듬이 불균형적이다. 번아웃에 이를 때까지 일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나를 구워 삶고 지지고 볶도록 놔두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 중의 대부분이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더라도, 그러니까 물리적인 시간으론 일의 시간이 비록 세네 시간에 그칠지라도, 정신적인 일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일상에서 일을 위한 생산의 시간만 있을 뿐 휴식을 위한 잉여의 시간을 마련해놓지 않은 탓이다. 나 또한 이런 상태로 몇 주, 몇 달을 살았으니 일상의 리듬이 망가지고 나아가 인생이 망하게 될뻔했던 것은 자명히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에는 생활계획표를 짰다. 머릿속에서 이성적으로 짜는, 이 시간엔 일어나고 이 시간부터 이 시간까진 일을 하는, 그런 효율적인 '계획표'가 아니라 실제 삶과 조율할 수 있는 '생활'계획표를 짜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러면서 스스로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는 게 좋은지, 그게 내 실제 리듬에도 맞는지, 밥은 일어난 직후에 먹을지, 좀 이따가 먹을지, 운동은 언제 할지, 책은 언제 읽을지 등등. 또 나는 얼떨결에 프리랜서 비슷한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일하는 것 따위는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고 탐탁치 않아하는 나 자신을 달래가며 고정적인 출, 퇴근 시간도 정했다.
그리고 그렇게 세운 생활계획표에 맞추어 그 다음 일주일을 보냈다. 물론 중간 중간 출근하기로 한 시간에 출근을 하지 않고 운동할 시간에 누워서 농땡이를 피우기도 했지만 당연히 있을 수 있는 변수라고 생각하고 유연하게 넘겼다. 내가 지향했던 것은 완벽한 일상이 아니라, 리듬이 있는 일상이었으니까. 일상의 리듬의 힘은 이처럼 오늘의 계획이 어그러지더라도 내일은 다시 극복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에 있다. 크고 작은 변수들에 맞추어 세워두었던 계획표를 탄력적으로 수정하며 베타 테스트용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그 다음의 일주일은 리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보냈고 다행히 큰 탈 없이 보낸 덕분에 오늘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처음 번아웃이라는 걸 알고 놀랐던 사실이 하나 있다. 내가 번아웃이란 것보다 나와 같은 상태를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엄청 많다는 사실에서였다. 번아웃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은 그것에 구체성을 주고 싶어서였다. 번아웃의 증상이 무엇인지, 왜 생기는지, 잘 쉬면 된다는데 어떻게 잘 쉬는지. 무엇보다 그 뻔한 말들을 진짜로 실행해보면 뭐가 달라질까를 체험으로 함께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를 위해 가장 처음으로 실천했던 한 가지는, 잘 쉬기 위해서는 일단 쉬는 것을 멈추라는 것이다. 쉬는 것에도 방법이 필요한가요, 하고 묻는다면. 삐빅- 그것은 지극히 트루입니다. 잘 쉬고 싶다면 나 자신이 건네는 물음에 먼저 귀를 기울이기를. 답은 언제나 질문을 가진 사람에게 있다.
* 다음 글: "번아웃을 극복하고 싶으세요?- 일상의 8:2 법칙"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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