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버금 Jul 01. 2019

붕어빵 예찬론

빵 고르듯 꿈꾸고 싶다



마흔다섯 번째 마음,

즐겁다



  누군가와 장래희망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생각해보니 이야기해본 것만 아니라 나 스스로 생각해본 적도 가물가물하다. 어른 노릇을 하고 있는 지금은 더 이상 꿈꿀 장래랄 게 없어서인지, 아니면 희망하는 것도 일이 되어서인지. 장래희망이란 단어를 어느 먼 나라의 단어처럼 낯설게 느낀지도 무척 오래되었다.


  붕어빵을 떠올린 건 7월의 어느 날에서였다. 한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꿈 이야기가 나왔다. 앞뒤의 맥락과는 관계없이 꿈결처럼 나온 말이었다. "나는 롯데마트 점장 하고 싶어" 내가 놀란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중 하나는 마트와는 연관이 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친구에게서 나온 말이란 점. 다른 하나는 '싶었어' 가 아니라 '싶어' 였다는 점이었다.

 

  그 말에 냉큼 "마트는 왜?" 라고 묻자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그냥 마트 좋아해서" 라고 대답했다. 하긴, 마트 좋아하면 그런 꿈 가질 수 있지. 수긍하는 눈치에 친구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마감하고 남은 음식 집 가져가는 것도 좋고" 덧붙인 이유에도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하긴, 그런 이유라면 충분히 좋을 만 하지.


  어렸을 때의 나도 동네 슈퍼의 외동딸을 진하게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과자 하나를 사려면 말도 잘 들어야 하고, 슈퍼에 가서도 엄마를 설득해야 하고, 그렇게 힘들여 가지고 가서도 동생으로부터 내 몫의 과자를 지켜야 했다. 그런데 슈퍼집 딸은 어떤가. 집에 가면 과자가 종류별로 쌓여있다. 아니, 그뿐인가. 집이 통째로 과자 동산이다. 슈퍼 딸은 그야말로 슈퍼였다.


  그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트가 좋다는 말에 격하게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곤 나도 자연스럽게 꿈결처럼 툭, 꺼냈다. "나는 붕어빵 장수하고 싶어"


  붕어빵 장수의 꿈은 초등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겨울에 먹을 수 있는 몇 가지 음식들은 다른 계절의 음식보다 냄새부터 '끕' 이 다르다. 계란빵, 붕어빵, 바나나빵의 갓 구운 빵 냄새. 호떡의 기름지고 달콤 냄새. 군고구마, 군밤의 냄새는 또 어떻고.


  추에 재촉하는 발들을 잡아 세우려면 이 정도의 냄새는 풍겨줘야 한다는 듯, 급이 다른 냄새를 뽐내는 음식들 가운데서도 나의 선택은 단연 붕어빵이었다. 앙증맞은 붕어 모양의 틀을 열고, 노란 주전자로 반죽을 붓고, 숟가락으로 팥소를 넣고, 앞뒤로 뒤집으면  완성. 먹는 재미에 더해 붕어빵을 굽는 과정을 보는 재미는 공짜로 얻는 덤이다.


  팥을 넣은 붕어빵, 슈크림을 넣은 붕어빵, 미니 붕어빵, 붕어빵보다 큰 잉어빵... 겨우내 밥 대신 붕어빵을 부지런히 먹으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 붕어빵 장사해야겠다. 그래도 단순히 좋아한다는 이유로 직업이 될 수 없음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지라, 나름대로 합리적인 근거를 찾았다. 그 근거란 이런 것이다.


  먼저, 붕어빵 장수는 일 년 중 겨울에만 일한다. 한 계절만 일한다는 것은 나머지 세 계절이 자유롭단 뜻이다. 봄, 여름, 가을 동안엔 마음껏 놀 수 있다! 몇 년 놀다 놀다 노는 게 지겨워지면 붕어빵의 질적 업그레이드를 위해 레시피 연구를 할 수도 있겠다. 반죽발효 정도와 팥소의 당도 같은 것.


  그도 아니면 여름 동안엔 남반구의 어느 나라로 가 붕어빵을 새로이 전파할 수도 있겠다. 그럼 여행도 하고 돈도 벌고 붕어빵도 먹고, 일석 몇 조인가. 짤막한 손가락을 꼽으며 뿌듯하게 웃다. 그땐 꿈이란 게 그랬다. 붕어빵처럼, 생각만 해도 절로 배불러지고 행복해지는 것.

  

  그 뒤로 한 살씩 먹을 동안 꿈이란 건 소박하고 평범한 모양으로 한 단계씩 작아졌다. 모험을 꿈꾸던 장래희망은 차츰 구체적인 직업과 직무의 이름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 장래라니, 희망이라니. 그런 것들은 더 이상 꿈도 못 꿀 꿈이 되어버린 것 같다.





  빵 고르듯 살고 싶다, 라는 제목의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는데, 그 선택은 어렵기만 하고 나의 현실만이 두드러질 뿐입니다. 빵을 고르는 것처럼 나의 기분만이 중요하면 좋을 텐데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평생 모르겠는데 좋았던 순간만큼은 말할 수 있지 않나요?'


  어떤 꿈이든 이렇게 꿈꾸어 볼 순 없을까. 좋아하는 빵을 고르듯,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꿈들을 마음껏 골라보며. 나는 마트 점장을 하고 싶어. 나는 붕어빵 장수를 하고 싶어. 생각해보면 꿈은 과거형으로 말하지 않는 게 더 옳은 것 같다. 꿈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니까.


  잘 사는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도 모르는 바보 어른이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고르듯 입맛에 맞게 사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를 일. "나중에 롯데마트 차리면 알려줘야 해. 붕어빵 가게 입점하게" "그래, 로열티는 1%" 빵처럼 부푼 꿈들이 둥실둥실 오가고 있었다. 철 모르는 어느 여름었다.






* 매일의 감정을 기록합니다.
* 말글  your_dictionary_ 

* 그리고 사진 ⓒ 2nd_roll 




매거진의 이전글 이 흉터에 대한 엄청난 이야기가 있는데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