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느덧 제 나이도 서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릴 적에는 어서 빨리 키가 컸으면, 하루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들 뿐이었는데, 어느덧 사회에 나와 보니 다시 어릴 적으로 돌아가고만 싶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게 무엇인지 부쩍 느끼게 되는 요즘입니다.
어머니 저는요, 그 작은 마을의 골목을 돌아 우리 집 근처 어귀에 다다르면, 먼발치에 앉아 팔 벌리고 반겨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아장아장 짧은 걸음으로 걸어가 당신에게 안기곤 했지요. 아직도 그 따뜻한 품이 그립습니다. 어머니 저는요, 매일 아침 깨워주시던 다정한 목소리와, 책가방 메고 등교할 때 잘 다녀오라 말씀해주시던 당신의 인사가 그립습니다. 저녁에 돌아오면 환하게 켜져 있는 집안과 따뜻한 저녁 식탁까지도요. 이제는 사무치게 그리운 추억일 뿐이지만.
어머니,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시절을 기억하시나요. 당신께서는 외출을 하실 때마다 항상 문 앞에 짧은 메모를 남겨두곤 하셨지요. "아들, 요 앞 목욕탕에 잠깐 다녀올게", "아들, 장 보러 다녀올게". 사실 저는 그 메모들을 볼 때마다 울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도 집에 돌아와 불 꺼진 방 안에 홀로 텅 빈 공간을 보는 것이 싫었나 봅니다. 그런데 지금은 매일을 홀로 텅 빈 집안에 들어가 온기를 채우고 있네요.
어머니,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요. 시간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는데 아무 준비 없이, 등 떠밀리듯 어른이 되어버린 저는 어떡해야 하는 걸까요.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이런 저를 결코 기다려주질 않네요. 어느새 훌쩍 자라 사회의 일원이 되어버린 제게, 어른이 된다는 건 싫은 일도 웃어넘겨야 하고, 힘들 일은 견뎌야만 하는, 좋은 일은 하나도 없는 그런 것 같아요. 어느 어린 소년에겐 영원히 철들지 않는 게 단 하나의 꿈이었는데, 이제 그 소년의 거울엔 어느새 철들어버린 한 남자만 서 있네요. 주름과 새치로 하루하루를 이겨내야만 하는 어떤 한 사람이 말이에요.
저는요 어머니, 어른이 되는 게 싫습니다. 매일을 견뎌내야 하고, 언제나 타협해야 하고, 사회의 주인공이 아닌 조연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아 싫습니다. 세상 속에 작은 부품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아 싫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어느새 작아진 아버지의 어깨와 굽어버린 당신의 등을 보아야 하는 것도 싫습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마치 누군가를 놓쳐버리는 것만 같아 싫습니다. 속절없이 혼자가 되는 것 같아 싫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제가 어른이 되어야겠지요. 힘들고 지쳐 울고 싶었던 순간들에도, 세상의 무게를 온전히 짊어지고 지켜주신 것처럼 이제는 제가 당신들을 지켜내야겠지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던 때, 뒤 돌아보면 당신들이 웃고 있었던 것처럼 언제나 제가 당신들을 안아주어야겠지요. 그게 어른이 된다는 것이겠지요.
이제는 제가 기다리겠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당신이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우산 들고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