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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소연 Oct 17. 2020

내 이름

연재 프로젝트 #2

소개팅에서 건네받은 상대의 이름은 그에 대한 첫인상에 꽤 큰 영향을 미친다. 요즘에야 흔한 작명이라고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빈’, ‘준’ 같은 글자가 들어 있다든가, 외자로 이루어진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상에게 도회적이거나 이지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주곤 했기 때문이다. 인상 깊은 이름은 그를 절대 잊을 수 없게 만들었고 ‘가을’이나 ‘다솜’과 같은 순우리말로 이루어진 이름도 대상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동생 이름은 ‘곤’이었다. 성이 하 씨다 보니 풀 네임이 ‘하곤’인 셈인데, 늘 그 이름이 부러웠다. 지어진 과정이든, 발음이든, 독특함이든 뭐든 간에 내 것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할아버지는 태어난 둘째 손주가 사내아이라는 말에(나와 내 동생은 영국에서 태어났는데, 그 나라에서는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아이의 성별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 씨 가문의 족보를 뒤져 외자 이름을 가진 정치인 세 명의 이름을 주셨다. ‘하민’, ‘하진’, ‘하곤.’ 세 이름을 받아 든 아직 서른 하나에 불과했던 젊은 아버지는 그중에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골랐다. 그리고 그 이름에 ‘산 이름 곤(崑)’자를 쓰기로 했다.     

동생 이름이 워낙 독특하기도 했지만 얼굴 생김새도 하얗고 곱상하여 여자 아이들만큼이나 예뻤다. 자라는 내내 동네에서 그 애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어딜 가나 '하곤', '하곤' 했고 '하곤이'가 뭘 하면 저 동네 끝까지 소문이 났다.

하지만 난 그냥 ‘곤이 누나’였다. ‘곤이 누나’는 눈에 띄지 않았고 어려서부터 지독한 근시인 데다 공부가 전부인 줄로만 아는 꽉 막힌 아이였다. 관심의 중심인 내 동생이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애가 부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흔하고 맹탕 같은 내 이름 탓이었다. 왜냐면 내 이름은 애초에 잘못 지어졌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손녀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서울의 가장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갔다. 그가 여러 정치인의 뒤를 봐주고 있는 비선 실세라는 말도 있었고 할아버지의 사업도 그 점쟁이 말대로 하니 술술 풀렸기 때문이다. 그가 요구한 터무니없는 복채는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점쟁이에 대한 굳은 믿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보다는 손녀 아이가 절세 미녀라는 점괘가 나왔기 때문이 더 컸다. 갓 태어난 여자 아기에게 ‘예쁘다’는 말만큼 기분 좋을 칭찬이 어디 있을까. 그 자리에서 비싼 이름도 선뜻 받아 들고 한걸음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영국의 아들 내외에게 전화를 했다.

“재훈아, 갸 이름은 현주 레이. 하, 현주. 내 한 달 뒤에 영국, 가꾸마.”

장거리 통화로 ‘현주’라는 이름은 바다를 건너고 산을 건너 기어코는 아직 생후 3일밖에 지나지 않은 나라는 존재에 들러붙어 버렸다. 빛날 현(炫)에 붉을 주(朱). 밝고 붉게 빛나는 사림이 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는 약 한 달 뒤, 한 중년의 여인이 19XX 년 히스로 공항에 도착한다. 무수히 많은 백인들 틈 사이로 ‘어머니!’라는 소리와 함께 앳된 동양 부부가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할머니가 현주라는 이름을 가진 손녀가 만나는 첫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이 ‘현주’라는 이름이 얼마나 흔해 빠졌냐면, 《내 남자의 로맨스》라는 영화에서 지극히 평범한 여자 친구로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도 현주였고, 김승옥 작가의 단편 소설 중 「야행」에서는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을 가진,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전위적인 여성 캐릭터인 ‘현주’가 등장했다. 연예인의 이름(배우 손현주 씨, 배우 김현주 씨)이기도 했고,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컴퓨터 브랜드 이름에도 ‘현주’가 붙어 있었다.

예술이나 철학은 그것을 담는 사람의 이름을 따라가는 것 같았다. 하여 흔해 빠진 이름을 가진 내게 이름은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들뢰즈, 지젝, 라캉, 보부아르. 이름만 들어도 압도되는 느낌이 있지 않은가. ‘현주’는 소설가로서 전혀 이상적이지 않다. ‘정세랑’ 작가처럼 울림소리가 연달아 나는 청아한 이름도 아니요, ‘장강명’ 작가 같이 강하고 힘찬 이름도 아니었다. ‘초엽’은 무척이나 세련되었고 ‘연수’는 순수했다. 할머니는 늘 내게 현주라는 이름이 좋다고 강조하셨는데, 내가 반문할 때마다 그는 경상도 사투리로 이렇게 얘기했다.

“탁(허공에 두 손으로 원을 그리며), 말이야 이렇게 탁, 돌 탱주 같이 야 물차 보이지 않냐 말이야.”

돌탱 주가 뭔지도 모르겠고 야 물차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어른들은 너무 작위적이었다. 난 새 이름을 원했다. ‘프랑수아즈 사강’이나 ‘데이비드 보위’ 같은 유명한 예술가들의 이름처럼. 묵직한 의미나 사연이 담겨 있듯이 모던하면서도 세련된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싶었다.

각종 한글 이름 사전을 뒤적이고, 친구들에게 이름을 받기도 하고, 누군가의 허세스러운 이름을 따라 하기도 하며 다른 내가 되고자 발버둥 쳤다.      


다시 19XX 년, 히스로 공항. 할머니는 강보에 쌓인 아이의 얼굴을 설레는 마음으로 들췄다. 그런데.

여러 번 양보해도 점쟁이가 말한 절세미인의 얼굴은 아니다. 아무리 갓난아이라도 조금이라도 태가 나는 법이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불어 터진 살집, 눈, 코, 입은 쪼그라들어 있다. 백인들 사이에 유일한 동양이었던 부부의 아이가 다른 사람의 아이와 바뀌었을 리 만무했다. 철없는 어린 부부는 그래도 제 새끼가 예쁘다며 자랑스러운 듯 서 있다. 그들의 웃는 낯에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칭찬은 별로 없었다. 한참 뒤,

“...애가 참, 건강하게 생겼다. 건강이 최고 레이.”

라는 말 밖엔.

진화의 법칙상 예쁘지 않은 아기들은 애교가 많았다. 아이는 방실방실 잘 웃고, 먹을 것을 가리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고, 할머니 말 그대로 잔병치레 하나 없는 ‘건강한’, ‘건강이 최고인’ 아이가 되었다. 할머니의 자랑이 되었다. 물론 할머니는 그 후로는 그 점쟁이에게 다시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동생의 이름은 점쟁이 대신 할아버지가 공을 들이시게 된 것이고.               


-에필로그-

이제 더는 새로운 이름을 찾지 않는다.  '하현주'가 '하현주'로 수 십 년을 살아온 통에 '하현주'는 '하현주' 외에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이도 저도 아닌, 탁하고 돌 탱주 같은, 밍밍한 이름 탓에 이름이 드리울 수 있는 편견에 짓눌리지 않고 내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여 이 글도 내 이름으로 쓰고 있다.      


아, 내가 이제 내 이름에 만족하는 것과는 별개로 해명을 해야 할 일이 있다. 점쟁이에 관한 일이다.      

그 점쟁이는 과연 돌팔이였을까. 

그건 아니다. 할머니가 점쟁이에게 준 당신의 손녀딸 사주팔자 시간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한참 뒤에나 알게 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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