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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소연 Oct 17. 2020

쓸 수 있는 밤

연재프로젝트 #1 

이따금 어떤 일이나 대상에 대하여 아주 천천히, 수많은 밤을 들여 한 편의 글을 쓰곤 했다.  거칠고 날 선 감정들을 최대한 억누르고 다듬어, 마침내는 정제된, 되도록이면 완전한 언어로 완성하고 싶기 때문이다. 보통 그럴 때는 대상에게 '너무나 많은'이라는 단어로 차마 모두 담을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써도 글이란 언제나, 그리고 여전히 마음 같지 않다. 진지한 마음을 감추고자 할 때면 지나치게 은유적이거나 하고 싶은 말의 외연만을 아주 간신히 더듬고 있을 뿐이었다. 반대로 넘치는 감정들을 모두 담은 글은 어김없이 촌스러워졌고 참아 줄 수 없을 만큼 감상적이 되곤 했다. 무심하고 배려 없는 글은 대상에게 있지도 않은 한계를 만들어 냈고 누군가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주기도 했다. 

하여 나에게 쓴다는 것은 위험 속에 스스로를 몰아넣고 그 책임을 오롯이 맞이하는 삶을 말했다.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 삶이 어디 있겠냐마는 적어도 내게 쓰는 삶은 그렇지 않은 삶과 조금 다른 궤를 가는 것 같았다. 함부로 사유하지 않겠다는 약속, 당신을 내 기준에서 평가하지 않겠다는 다짐,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용기를 선언하는 행위. 적어도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무겁고 복잡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상하고, 가장 따듯하고, 가장 진솔한 일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마음 쓰이는 대상이 생기면 어김없이 쓰고자 하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한 말로 그를 설명하고 싶었고  긴 퇴고 끝에 기어코 살아남은 보석만으로 당신의 소중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내가 남기고자 했던 감정의 자국은, 어김없이 누군가에 의해 먼저 글로 형상화되어 있었다. 단지 훨씬 더 위대한 문체와, 훨씬 더 대담한 서사와, 훨씬 더 독창적인 형식으로. 그래서 종종 내 글은 공허한 메아리 혹은 동어의 반복일 뿐이라는, 결코 무엇인가를 먼저 포착하여 말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다소 절망적인 감정에 빠지곤 했다. 레이몬드 카버나 이안 멕큐언, 줄리안 번즈, 로셀라 포스 토리노 같은 작가들은 언제나 나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단지 쓰며 살고 싶다는 내 소망을 실패 없이 좌절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고 싶은 밤은 찾아왔다. 이런 쓰고자 하는 내 작은 몸부림은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당신이 얼마나 눈부신지, 당신이 얼마나 찬란한지를 남기고자 하는 바람이었다. 마음 놓고 걱정 없이 무엇인가를 가장 진솔하게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때로는 사랑한다는 말 없이도 그보다 더 깊은 마음을 담을 수 있다. 때로는 아주 짧은 단어 하나로도 당신을 원함보다 더 원함을 보여줄 수 있는 밤이 왔다. 


그럴 땐,  어김없이 쓸 수 있는 밤이었다.


(2020.10.01 씀)


#일기보다먼수필보다가까운 #첫번째글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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