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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소연 Oct 17. 2020

이 계절로 말할 것 같으면

연재 프로젝트 #7

한참 만의 답장이었다.

‘할 말 있어. 거기서 좀 있다 봐.’

외면하던 작고 무수한 기억의 조각과 느낌의 파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피곤해 보이던 표정, 크고 작게 다투던 일들, 이별과 만남의 반복, 점점 뜸해지던 연락과 너무나 당연해진 서로의 존재가 지난했던 연애가 이제는 정말, 끝을 향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동시에 권태롭기 그지없는 중년 부부보다 못한 우리 관계가 차라리 끝장이 나길 바랐다.

몇 번의 이별과 만남을 반복했지만 이번은 달랐다. 마지막이었다. 아무리 준비를 한들, 언제쯤이면 이별이 덜 아플지 결코 알 수 없다. 하루? 일주일? 아님 한 달?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 말들이 공허한 메아리임을 모르지 않았다. 마음이 떠난 곳에 서성이고 있어 봤자 내 모습만 초라해질 터였다. 나만 그 손을 놓으면 힘없이 쓰러져 버릴 우리 사이에 최대한 담담하고 싶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이별을 위해 내가 해야 할 건, 최대한 나를 가다듬는 일뿐이라고.


학부시절 함께했던 그와 나는 성향이 무척 다른 회사에 취업을 했다. 되도록 모든 것들에 대해 함구해야 했던 그의 일과되도록 많은 것들을 보여줘야 하는 나의 일이 극단적인 스펙트럼 끝단에 서있었듯, 단단했던 오랜 연애가 서서히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없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나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쏟아지는 신입에 대한 평가에 한 마디, 한 걸음 그 모두가 자기 검열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고 결코 편하지 않은 회식 자리에서도 자본주의 미소를 장착하며 비위를 맞추는 것만으로도 그가 내 삶에서 가졌던 비중이 작아지기에 충분했다.

그렇다고 하여 단 한 번도 애정이 느슨해진 것은 아니었다. 남자 친구가 있냐는 회사 사람들의 질문에 언제나 ‘그렇다’고 대답했고, 취업을 하면 서서히 헤어지게 될 거라 확언을 하는 한 선배의 말에 하하,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선배 놈아, 니 연애는 잘 되는지 두고 보자’라고 분해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만남의 가능성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이는 나만의 일은 아니었다. 남녀 비율이 적당했고 젊은 사람들이 많았던 첫 직장에서는 심심찮게 러브라인이 그려졌다. 동기들끼리, 같은 부서의 선후배가, 외주에서 들어온 인력들과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그 일들은 텁텁한 신입 생활에 재미를 주기도 했다. 이번에는 10층 스타 일국의 누가 8층 음악 사업부의 누구와 연애를 한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 모든 새로운 자극들은 나에게서 살짝 빗겨 나 있는 잡음일 뿐이었다. 마치 라디오의 주파수가 틀어져 선명하게 들리지 않는 것처럼, 나는 한 발자국 떨어져 그 모든 자극의 수면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그보다는 겹겹이 쌓아 올린, 여전히 손에 잡히는 그와의 옛 기억들이 소중했다. 나의 볼품없던 시기를 묵묵히 지켜봐 주고 믿어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나의 무엇인가를 그는 알아봐 줬다는 그 유일함과 고마움.

우린 서로 많이 닮은 사람이었으니 아마 같은 마음이었겠지. 그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든지, 갑자기 야망이 생겨 나 같은 여자 따위는 시시해졌다든지 하는 드라마는 없다. 단지 시간은 관계를 더 영글게도, 혹은 빛을 바라게도 했는데 대부분의 많은 보통의 오래된 연인이 그렇듯 우리는 후자였을 뿐이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마지막 약속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예쁘게 보일 필요가 없어진 우리 관계에 마지막 옷은 무엇을 입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너무 꾸민 내 꼴이 우스워질까 청바지 차림에 그가 평소 좋아하는 후드를 입고 조금 일찍 출발했다. 약속 시간에 종종 늦던 내가 마지막으로 갖출 수 있는 상대에 대한 예의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 만남이 우리 관계를 예전처럼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바보 같은 희망이었다. 내 얼굴을 보면 함께 했던 그 무수한 시간들을 되돌릴 수 없는 말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작고 초라한 희망. 우리는 늘 그러지 않았던가. 신촌 한복판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싸우던 철부지 시절도, 자꾸 미끄러지던 취업의 문턱에서도 함께 단단히 성장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자꾸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만나기로 한 놀이터에 도착했다. 기다림은 어떤 것도 증명할 수 없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내 기도를 들어준 적이 없는 신은 이런 간절함을 가여워하지 않을까. 이번에는 좀 다르지 않을까.

전화가 울렸다. 그였다.

“아직 출발 안 했지? 아무래도 네 얼굴 보면 말을 못 할 거 같아서 전화했어. 미안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뻔했다. 실망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아직 집이라고 거짓말했다.

“다행이야.”

이미 나와 있다는 것을 알 리 없는 그가 너무나 진부한 이별의 과정을 시작한다. 그렇게 몇 해를 함께 했던 시간이 너무 초라하게 단 한 시간 몇 분의 통화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싸움도, 눈물도, 욕설도 없는 담담한, 그와 나의 마지막 이별.

먼저 끊기는 수화음을 견디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참 멋없는 스타일인데, 무슨 경쟁도 아니건만 지기 싫어 마지막 인사를 한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재빨리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덕분에 차가운 기계음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정막이 몰려왔다. 들뜨던 마음과 감정들이 모두 가라앉는다. 해내고 보니 아무 일도 아닌.

일부러 돌아 돌아 걷는다. 문득, 아득한 정적 속에 귀뚜라미가 울고 있다는 것을, 다리에 와 닿는 바람이 어제보다 조금 더 차갑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고 보니 밤이 점점 짙어지는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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