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소연 Oct 17. 2020

Separate Ways, Together

연재 프로젝트 #6

노주발이 임신을 했다. 그동안 잉태한 친구는 여럿이지만, 이렇게까지 매일 연락하는 애가 곧 엄마가 되는 것은 처음이었다. 서로의 아주 작은 변화가 문자 몇 마디만으로도 느껴질 만큼 우리의 정서적 거리는 무척 가까웠다. 때문에 생명을 품는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엄마가 되기로 한 결심은 감히 ‘숭고’라는 단편적인 단어로는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깊고 넓은 것인지를 아주 조금 알아가고 있다.

사실 노주발의 그 자그마한 몸에 생명이 들어섰다는 말을 막 들었을 때 축하하는 마음, 그보다 더 먼저 자리를 차지한 것은 치졸한 이기심이었다.

‘우린 이제 정말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네.’

늘 두 개의 나란한 평행선을 그리며 사이좋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할 거라는 막연한 상상이 그 애의 결혼에 이어(서 서방 이 나쁜 놈아!) 또다시 1도만큼 벌어진 것이다. 더 이상 함께 공유하는 관심사도, 챙겨야 할 가족의 범위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삶의 무게도 달라진 우리가 예전 같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섭섭했다. 아니, 실은 그 보단 모두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과업을 완수하며 살아가는데, 여전히 고집부리는 사람은 나뿐이란 생각에 외로워졌다는 게 정확한 얘긴 것 같다.

난 노주발을 ‘밀크 선녀’라고 불렀다. ‘밀크’는 우유처럼 희고 맑게 살라는 의미였고, ‘선녀’는 사주에 조예가 깊은 그녀에게 내가 붙인 애칭이었다.

이십 대 말,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때로 우리는 용하다는 점집에 가 운세를 묻곤 했다. 관계에 대한 문제로, 가족의 안위로, 직장에 대한 고민으로. 가는 이유야 늘 차고 넘쳤지만, 거기는 뭘 잘못 봤네, 맞는 게 하나 없네, 사기 먹었네 하며 욕이나 실컷 하는 게 또 우리만의 힐링 루틴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사주를 공부하기 시작한 게 벌써 4년 정도 됐을까. 처음에는 책만 보던 것이 유튜브도 보고, 블로그도 보고, 재야에 묻혀있는 선생님들을 만나고 다니며 제법 구색을 갖춰 갔다. 이 유쾌한 ‘밀크 선녀’는 내 사주를 봐주곤 했는데 그놈의 운세는 뭐 그렇게 매번 바뀌는지, 결혼한다, 큰돈을 번다 하는 굵직굵직한 좋은 일들은 죄다 2년 뒤의 일이었다.

“너 재작년에도 나 2년 뒤에 결혼한다며?”

라고 볼멘소리를 하면.

“할 수 있었지~ 근데 네가 안 만났잖아~”

라고 썸 근처에도 안 갔던 남자 이름을 들먹이며 되도 않는 소리만 씨부려 대는 것이었다. 그렇게나 야매라고 욕을, 욕을 하면서도 나는 그 애를 찾았다. 그 풀이의 끝, 늘 괜찮다고 다 잘될 거라는. 너는 하고 싶은 것도 하고, 글도 쓰고,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그 따뜻하고 다정한 말이 좋아, 나를 믿어주는 눈빛이 좋아, 매번 같은 질문을 하고 의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우리가 철부지로 언제까지나 함께라고 굳게 믿어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서 서방과 결혼을 했다. 기어코는 아기마저 생겨 버렸다. 예상했듯 우리의 삶의 궤적은 아주 아주 많이 멀어졌다.

하지만 우린 여전히 매일 연락을 하고 나는 내 사주에 결혼은 언제냐고 귀찮게 군다. 물론 그 일상 속에서 그녀의 사소한 변화를 느낀다. 답장이 늦을 때가 많고, 조금 과격해졌고, 유머 감각은 2인분이라 그런지 훨씬 재밌다. 그래도 변함없이 내 친구 노주발. 그녀의 배 안에는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체가 빵빵이라는 태명으로 살아 숨 쉬고 있으며 나는 그 아이의 최애 이모가 될 것이다.

우리는 다른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함께.

Separate Ways, Together.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이 멈춘 날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