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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소연 Oct 17. 2020

일상이 멈춘 날들

연재 프로젝트 #5

일상이 멈춘 날들이 계속된다. 삶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지만 이번만큼 상투적이고 그러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이고 무자비한 모습으로 그 존재가 나타날 거라곤 차마 상상하지 못했다.

가까운 지인의 결혼식이 두 건 취소됐다. 인스타에서 팔로우하고 있는 하나의 독립서점이 문을 닫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함없을 것 같던 3월 학기 시작도 미뤄졌다.

타액으로 옮겨진다는 전염병 때문이다. 맥주의 한 브랜드와 같은 이름을 가진 그것은 우리의 작고 충만했던 일상을 완전히 마비시키고 있었다. 실로 놀라운 속도로. 반찬이 담긴 음식에 함께 젓가락을 대는 것도 송구스럽고 누군가가 눌렀을 엘리베이터 버튼마저 꺼림칙하다. 봄인데도 새로운 사랑을, 혹은 네게 입을 맞추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3월인데 장범준의 ‘벚꽃 앤딩’이 뜸해). 모두가 잠재적인 보균자. 사랑하는 사람도, 내 가족도, 심지어 나도, 믿을 수 없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이토록 구체적이고 극명하게 실현된 적이 있었던가. 나는 느낀다.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불안,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생활이 전 국민에게 노출될 것이라는 불안, 그 생활을 둘러싸고 집단의 상상이 막장 드라마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불안, 낯도 모르는 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불안을.

분노를 경험한다. 3번 환자를 향한 분노, 신천지를 향한 분노, 무능력한 정권을 향한 분노, 중국을 향한 분노, 우리를 거부한 다른 나라를 향한 분노를.

슬픔도 알게 된다. 급작스러운 무급휴가 조치로 다음 달 월세가 걱정인 사회 초년생의 슬픔, 작은 기침에도 심장이 쿵 내려앉는 아기 엄마의 슬픔, 파리 날리는 카페를 바라보는 사장의 슬픔을.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인간은 무심하고 거대한 자연의 물결을 막기에 턱없이 나약하다. 어떤 날은 500명이, 어떤 날은 800명이. 맥주 브랜드와 이름이 같은, 바로 그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감염되었다는 뉴스를 기어코 듣고 만다. 그거 걸리면 로또를 사야 한다는 몰상식한 우스갯소리는 쏙 들어갔다. 대구가 쑥대밭이 되고 나서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렸다. 아니 더 미쳐나갔다. 마스크를 사려고 기다리던 줄에서 확진자가 나오는 일이 다 뭐란 말인가. 확진자를 옮기던 구급요원이 맞은 침 세례는 또 뭐란 말인가. 신비화된 오컬트적 종교도, 이기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 와중에 따뜻한 선행도 함께 뒤엉킨,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속에 아주 작고 소중한 개인들은 비틀거리면서도 존재를 지속한다.

어떤 일들은 너무나 특별하여, 그것을 겪고 난 인간은 다시는 그 전과 같이 살 수 없게 된다. 누구에게는 부모의 이별이, 또 누구에게는 은사와의 만남이 그러하다. 지금 우리는 현대 과학과 의료 기술로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바이러스를 만났다. 그 바이러스는 인간의 무기력함을 이런 은유적인 방식으로, 마치 우리의 교만을 비웃기라도 하듯, 거침없이 짓밟고 지나가는 중이다. 물론, 우리는 이 또한 극복하겠지만, 다시는 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달라질 것이다, 아니 달라져야만 한다.

이 것이 단지 시작이 아니길. 부디 우리가 지속 가능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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